매년 5천만원짜리 목욕차량 기증…울릉도·연평도 등 10곳에서 운영
봉사 인연 최신원 SKC회장 권유, 34년만에 디너쇼…수익전액 기부
가슴이 찡할까요 정말로 ♬
12남매 중 11째라 겁 없었나봐…1만원·김치 한 포기 들고 상경
밝은 노래 부르고 싶다 매달려…'정말로' 히트해 스타덤 올랐죠
“2000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갔는데 외국인이 저를 보고 몇 살이냐고 묻더라고요. 몇 살 같냐고 되물으니 21세 같다고 해요. 실제 나이가 몇 살인지보다 몇 살로 사느냐가 훨씬 중요해요. 난 항상 21세로 살고 있어요.”
가수 현숙(본명 정현숙)은 항상 밝은 모습이다. 인터뷰 섭외를 위해 처음 통화를 했을 때도 10년은 알고 지낸 것처럼 반가운 목소리였다. 야외에서 사진을 촬영하다 그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시민들에게도 일일이 웃으며 답했다.
인터뷰는 경기 고양시 주엽동의 한식당 ‘와궁’에서 진행됐다. 일산에 있는 MBC·SBS 방송센터에 올 때 자주 찾는 식당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그가 왜 굳이 인터뷰 장소로 일산에 있는 식당을 선택했는지 궁금해하던 차에 음식이 나왔다. 단골 손님에게만 내놓다 인기가 좋아 정식 메뉴로 만들었다는 해신탕이었다. 꿈틀거리는 문어와 전복 가리비 닭 등이 가득 들어찬 솥과 샤부샤부로 익혀 먹을 각종 채소가 준비됐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고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가 봐요. 화려하고 근사한 곳보다 이런 분위기의 식당이 더 편안해요. 제가 좋아하는 미나리 쑥갓 등 풋풋하고 싱싱한 채소가 푸짐하게 나와서 좋고요.”
육수가 끓기 전에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전북 김제에서 12남매 중 열한 번째로 태어났다. 밝은 성격은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았다.
“형제가 많은 덕에 둥글게 둥글게, 모나지 않게 자란 것 같아요. 어디 가서도 사람들과 잘 친해졌어요.”
딸로는 막내이다 보니 어렸을 때 한 번도 새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언니들이 입던 검정색 교복 치마가 현숙에게 올 때쯤이면 색이 바래 회색이 돼 있었다고 한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남에게 베푸는 분들이셨다.
“아버지는 옆집이 어렵다고 하면 곡식을 가져다줬고 어머니도 김치를 담그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른들께 맛보라며 나눠주셨어요. 저도 어머니 손을 붙잡고 어른들을 함께 찾아다니며 ‘안녕하세요’라고 했어요. 지금의 성격은 모두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것 같아요.”
어린 현숙의 특기는 음악 체육 수학이었다. 김제 금성여중 배구부 선수였고, 조회 시간에는 단상에서 애국가 지휘를 맡기도 했다. 중3 때는 주산 1급을 땄다. 그는 “운동회만 되면 음악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이 날 데려가려고 싸웠다”며 웃었다.
“배구부에서 합숙훈련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군산KBS가 주최하는 노래자랑을 하더라고요. 친구와 둘이서 가발을 쓰고 나가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을 불렀는데 1등을 했어요. 그때부터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됐죠.”
육수가 한소끔 끓어오른 뒤에 살짝 익은 해산물을 건져냈다. 먹기 좋게 잘라낸 문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질기지 않고 적당히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맥주잔을 비우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현숙이 학교에 다닐 당시 마을에서 서울에 간 사람들은 모두 고시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가수가 되겠다고 집을 나서면 “몽둥이를 맞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현숙은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 앞두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어머니에게 받은 1만원과 김치 한 포기, 쌀 한 말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나 모르겠어요.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라서 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다행히 일이 잘 풀렸다. 서울에 올라온 그해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중동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을 위한 노래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현숙은 나이에 걸맞은 밝은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작곡가 김정택 씨(현 SBS 오케스트라 단장)를 무작정 찾아갔다. 김씨는 ‘밤이면 밤마다’ ‘불티’ 등을 만든 ‘히트곡 제조기’다.
“짜장면 한 그릇 시켜놓고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에게 밝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나온 노래가 ‘정말로’였어요.”
‘가슴이 찡할까요 정말로, 눈물이 핑돌까요 정말로’란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국민 가요’로 불릴 만큼 대히트를 쳤고, 현숙은 스타덤에 올랐다. “요즘의 이효리 장윤정 저리 가라 할 만큼 인기가 좋았죠.”
해산물을 건져낸 육수에 채소를 넣고는 화제를 바꿨다. 그는 지난 3, 4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효 사랑 나눔 디너쇼’를 열었다. 가수생활 34년 만의 첫 디너쇼였다. 디너쇼를 열게 된 것은 최신원 SKC 회장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현숙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기지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을 봉사 현장에서 종종 만났다. 최 회장은 현숙이 행사장에서 어르신들에게 인기 있는 모습을 보고는 ‘어버이날 디너쇼’를 열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죠. 고민하다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못할 것 같아 스승이신 김 단장님을 찾아갔어요. 대신 여기서 얻는 수익금은 모두 기부하겠다고 결심했죠.”
현숙은 김 단장과 함께 직접 공연을 기획했다. 무대 의상은 기존에 입었던 옷을 재활용했다. 비용을 아껴 조금이라도 더 기부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대표곡 ‘정말로’를 랩을 가미한 힙합으로 편곡했고 ‘나의 어머님’은 소프라노 김형애와 함께 맞췄다. 남성 4인조 성악 앙상블 인치엘로와 칸초네를 편곡한 노래도 들려줬고 ‘내 인생에 박수’를 부를 때는 탭댄스도 선보였다.
장르를 망라한 버라이어티 쇼로 꾸몄다. 방송인 김혜영, 탤런트 김성환, 가수 박상민 추가열 등 ‘절친’들도 발벗고 나섰다. 표는 일찌감치 동났고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현숙은 다짐했던 대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경기지회에 수익금 1억원을 기부했고,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디너쇼를 준비하면서 4~5㎏ 정도 살이 빠졌어요. 정말 신경을 많이 썼는데 많은 분이 찾아와 주시고 반응도 아주 좋아 감사했어요.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다짐도 했고요.”
“공연 중 파마머리만 봐도 엄마 생각나 가슴 찡해”
‘정말로’ 이후 ‘포장마차’ ‘건곤감리 청홍백’ 등이 잇달아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하던 현숙은 1990년대 들어 슬럼프를 맞았다. 설상가상 부모님 두 분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처지였다. 힘든 나날이 계속됐지만 재기의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1995년 그의 효행을 찍은 TV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는데 배경 음악으로 쓰였던 ‘사랑하는 영자씨’가 사랑을 받게 됐다. ‘효녀 가수’라는 수식어도 이때 얻었다. 이후 ‘요즘여자 요즘남자’ ‘춤추는 탬버린’ 등 매년 히트곡을 내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효녀 가수라는 말이 정말 부끄러운게, 나 혼자 부모님을 모신 게 아니거든요. 주중에는 언니와 형부가 모시고, 주말에는 오빠와 올케언니가 모시고…. 나는 오히려 병원비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어요. 혼자 한 일도 아닌데 나만 효녀라고 하니까 가족에게 미안해요.”
방송 이듬해인 1996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2007년에는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13년 동안 말을 못하셨고 아버지는 치매였어요. 처음에는 음식을 앞에 두면 두 분이 걸려서 잘 먹지도 못했어요. 엄마가 누워계실 때 밖에서 가슴 아픈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와 화장실 물을 틀어놓고 운 다음에 엄마한테 인사하곤 했어요. 요즘도 공연할 때 엄마와 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분을 보면 눈물도 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래요.”
그는 2004년부터 치매 노인과 독거 노인들을 위해 이동 목욕 차량을 매년 한 대씩 기증하고 있다. 김제를 시작으로 울릉도 하동 추자도 연평도까지 10곳에서 차량이 운영되고 있다. 차량의 가격은 대당 5000만원에 이른다. “한 달에 400만~500만원씩은 저축해야 해요. 사실 통장이 마이너스가 되는 달도 있어요. 그래도 이 일만큼은 노래하는 동안 계속하고 싶어요.”
칼국수와 죽까지 먹고 나니 어느덧 3시간 넘게 시간이 흘렀다. 취기도 적당히 오른 참에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졌다. 결혼 계획에 대해서다. “순리대로, 다가오는 대로 하려고 해요. 가야 할 운명이라면 가고, 이대로 살아야 한다면 살고…. 일부러 만들어내려고는 하지 않지만 가정을 이뤄 보통사람처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현숙은 ‘늘 밝게 살자’를 삶의 모토로 삼고 있다.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내 마음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현숙의 단골집 와궁 단골만 맛보던 해산물·백숙 ‘해신탕’ 정식 메뉴로
경기 고양시 주엽동에 있는 한식당으로 2008년 10월 개점했다. 원래 양·대창, 한우 등 고기를 주력으로 파는 집이다. 단골손님에게 내놓던 해신탕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자 이를 정식 메뉴로 만들었다. 엄나무 당귀 황기 등 16가지 한약재로 만든 한방육수에 닭 문어 전복 가리비 키조개 능이버섯 등을 넣는다.
살아 있는 해산물을 사용하고 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먼저 살짝 데친 해산물을 먹고 미나리 쑥갓 배추 등 채소를 샤부샤부 형태로 즐긴 다음 푹 고아낸 백숙을 맛본다.
건더기를 건져낸 육수에 칼국수를 끓여 내고 마지막으로 찹쌀밥으로 죽을 만들어 먹는다. 재료 준비를 위해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7만5000원(3~4인) 9만5000원(4~5인). (031)914-4448
이승우/송태형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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