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1일 현대자동차에 연구원으로 입사할 예정인 김완규 씨(32). 그는 20대를 자동차에 푹 빠져 살았다. 경남의 한 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스무 살 때부터 4륜구동 지프로 산길을 오르내렸다. 거친 길을 달리느라 부품이 자주 망가졌다. 수리비 부담 탓에 아예 자동차 정비를 배워 어지간한 부품 교체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준이 됐다.
“차에 빠져 살다가 어느 순간 취미가 직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했죠.” 그는 부산의 동명대 자동차공학과에 편입했다. 차를 직접 만드는 자작 자동차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그는 작년 말 ‘스펙을 끄고 열정을 켜라’란 제목의 현대차 인턴 모집 포스터를 봤다. 이 회사의 인턴 과정인 ‘H 이노베이터’ 2기로 뽑힌 그는 남양연구소에서 5주간 실습과 평가를 거쳐 입사가 확정됐다. ‘현대차 인재채용팀 관계자는 “전공이나 어학실력, 해외연수 등 이른바 ‘스펙’보다는 자동차와 관련 산업에 마니아 수준의 열정을 가진 사람을 뽑자는 것이 인턴 제도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 인턴제 도입한 기업 95%가 채용과 연계
국내 기업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인턴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초기에는 단순체험형 인턴이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엔 인턴을 마치면 공채 때 서류전형과 시험을 면제해주거나 가산점을 주는 채용연계형 방식이 대부분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인턴제를 도입한 37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회사의 95%가 인턴 과정을 채용과 연계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일 인턴 접수를 마감한 삼성은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와 면접으로 인턴을 선발한다. 6주간 인턴을 마친 뒤 하반기 공채 때 같은 회사 및 직군에 지원하면 SSAT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한국전력 등 일부 기업은 인턴 수료자가 공채에 지원하면 5~10%가량의 가산점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인기있는 기업은 인턴에 합격하는 것 자체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만큼이나 어려운 게 현실이다.
통상 인턴 기간은 대기업이 1~3개월, 중소기업은 4~6개월이다. 인턴 근무자도 회사와 단기근로계약을 맺고 4대 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평균적으로 대졸 초임의 80% 수준을 급여로 받는다. 기업들이 인턴제를 확대하는 이유는 충성도 높은 지원자를 시간을 두고 골라낼 수 있어서다. 구직자는 회사가 자신의 기대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고, 회사는 지원자의 적성과 자질을 검증할 기회를 갖게 돼 서로 ‘윈윈’이란 것이다.
▷ 취업준비생 "혹시 시간낭비 아닐까" 불안
인턴제가 자리 잡았지만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기업들이 값싼 비용으로 구직자들을 쓴 다음 쉽게 내치는 도구라는 비판이 있다. 이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은 인턴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 22일 한불상공회의소가 서울대에서 주최한 채용설명회에서 참석자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1%는 인턴이 취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변에 인턴 경험을 권유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도 73%에 달했다.
하지만 인턴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인턴 경험자의 46%는 ‘명확한 업무지침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설문 참여자들은 ‘낮은 보수와 노동력 착취’(37%), ‘부족한 직무교육’(31%), ‘낮은 정규직 전환율’(27%)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설명회에 참석한 최수진 씨(중앙대 4학년)는 “인턴에 지원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합격이 쉽지 않을뿐더러 뽑히더라도 최종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시간만 버릴까봐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턴제를 운영하는 회사 측도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경총 조사에서 기업들은 ‘정규직 전환 후 입사 포기’(30%), ‘현업 부서의 업무 과중’(25%), ‘인턴 지원자들의 역량 미달과 무관심’(20%) 등을 고충으로 꼽았다.
박해영/배석준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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