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스펙보다 마음씨 쌓기

입력 2013-05-24 17:36  

꽃이 각기 다른 빛깔로 피어나듯 차이가 곧 다양성으로 여겨질 때 삶의 과정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




스펙과 마음 중에서 우리 사회가 선호하는 말은 단연 스펙이다. 내가 보기에 두 말의 차이점은 ‘쌓기’와 ‘버리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스펙쌓기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처음엔 자신을 위해 삶의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 돼 버렸다. 반면에 마음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나를 버리기’에서 출발한다.

며칠 전 텔레비전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런 스펙과 마음씨 대결이 전개되는 장면을 보게 됐다. 청춘남녀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스펙을 갖춘 쪽과 마음씨가 좋은 쪽으로 나뉘어 여자의 선택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과연 스펙이냐 마음이냐 하는 상호 대비되는 구도가 꽤나 흥미로웠다.

우리 사회에서 스펙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대략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탄탄대로를 거쳐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 혹은 집안형편이 어려웠지만 온갖 역경을 헤치고 좋은 직장에서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양쪽 다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스펙을 쌓는다는 것은 내면보다는 외면, 과정보다는 결과만이 목표라는 것이다.

스펙쌓기가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남들에게 보이는 결과가 우선시된다면, 반대로 마음은 보이는 외면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면에 초점을 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말해주듯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는 말이 마음의 가치를 대변한다. 그러나 실상은 스펙이 중요시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가난은 더 이상 청빈과 같은 명예가 될 수 없다. 가난은 사회적 신분의 최하층으로서 더 이상 계급 상승이 불가능해진 상황, 그래서 약자를 지칭하는 대명사에 다름 아닌 말로 전락한 것이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삶의 과정을 소중히 하고 매순간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담금질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나는 이렇게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이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 종교인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들 주변의,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사람들 속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짝’을 찾는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그런 평범하지만 훈훈한 이야기가 있었다. 거기서 한 남자는 양식업을 하는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며 “바닷물에 한시도 손이 마를 날이 없어 부모님이 빨리 늙으시는 것 같다”며 나이 들면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마음씨는 요즘 같은 사회에서 지나치게 평범하고 착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런 평범한 이야기 속에 가난이란 자기를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는 무소유의 철학이 담겨 있기도 하다.

가난은 스펙이라는 플러스, 플러스로 치닫는 사회에서 마이너스, 마이너스를 조용히 실천하는 삶의 과정에서 태어난다. 사람의 관점이나 인품이 진정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플러스라는 가산하기, 그러니까 끊임없이 삶에 무엇인가를 ‘더하기’보다는 마이너스라는 ‘빼기’ 작업을 할 때이다. 애정이나 염치나 미안함 등도 따지고 보면 나보다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버리게 되면 평범 속에서 비범이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누가 선택받았느냐 하는 결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스펙을 갖춘 사람도 인품이 좋을 수 있고, 인품이 좋은 사람도 역시 스펙을 잘 갖추었을 수 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시각을 넓혀나갔으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꽃이 각기 다른 빛깔과 향기로 다투어 피어나듯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양성에 주목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차이가 우열만이 아니라 서로의 다양성을 포용해주는 개념이 될 때, 겉과 속이라는 스펙과 마음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보는 자율적인 시각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사랑과 배려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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