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추적 면제·비과세…1998년 법으로 보장해놓고
이제와선 불법거래 유형 간주
총 3조8735억원 발행…일부 자산가 여전히 보유중
최근 검찰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500억원 상당의 무기명채권을 두 자녀에게 증여한 것을 문제 삼으면서 자금 출처 및 증여세 탈루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과연 이 논란이 타당한지에 대한 재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과거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금추적 조사면제와 비과세를 법으로 보장한 채권을 이제 와서 탈세 등 불법거래의 한 유형으로 끌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일명 ‘묻지마 채권’으로 불리는 무기명채권은 정부가 1998년 6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순차적으로 발행한 채권이다. 1997년 12월 개정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제법) 부칙 제9조 ‘특정채권’ 규정이 발행 근거다. 당시 고용안정채권(근로복지공단 발행), 증권금융채권(한국증권금융),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세 종류로 발행됐다. 고용안정채권 8735억원, 증권금융채권 2조원,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1조원 등 발행금액은 총 3조8735억원에 달했다.
무기명채권은 이자율이 연 5.8~7.5% 수준으로 발행 당시 10%를 웃돌던 금리에 비해 턱없이 낮았지만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금리수준을 넘어서는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채권을 살 때 실명 확인을 하지 않는 비실명거래를 보장받았다. 자금출처 조사도 면제받았다. 예를 들어 무기명채권을 현금화해 건물을 매입할 경우 국세청은 매입자금의 자금 출처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다 최고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가 면제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금융실명제법 부칙 9조는 무기명채권과 관련, ‘특정채권의 소지인에 대하여는 조세에 관한 법률에도 불구하고 자금의 출처 등을 조사하지 아니하며 이를 과세자료로 하여 그 채권의 매입 전에 납세의무가 성립된 조세를 부과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15억원을 현금으로 증여할 경우 증여세 등을 물고 나면 증여금액은 9억원에 불과했지만 무기명채권은 이자소득세만 물면 돼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다만 무기명채권은 그 자체를 넘겨주는 데는 세금을 물지 않지만 현금으로 바꿔 물려주면 상속·증여세를 내야 한다.
무기명채권은 2003년 6월부터 순차적으로 만기가 돌아왔고 대부분 회수된 가운데 일부 자산가들이 여전히 상속·증여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증권금융에 따르면 증권금융채권은 발행물량 2조원 대부분이 회수됐고 올 3월 말 현재 10억5000만원이 남아 있는 상태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무기명채권
1998년 6월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발행한 채권. 실명으로 거래하지 않으며 자금출처조사와 상속·증여세를 면제받는다. 1997년 12월 개정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부칙 제9조에는 ‘특정채권’이란 이름으로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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