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성장체제 종말 고할 것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야간 경복궁은 문화재가 아니라 유원지였다. 그렇게 경복궁 중건을 위해 당백전을 찍어대던 시절로 돌아갔다. 밀치고 넘어져 밟혀 죽었다는 구한말 풍경 말이다. 21세기 아비투스는 부재(不在)증명을 뗀 지 오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카톡은 집단 관음증의 증폭기다. 스마트폰에는 엉뚱한 사진들이 인턴녀로 도배질되었다. 하기야 주류 언론부터 파파라치 흉내를 낸 지 오래다. 책과 신문이 아닌 드라마와 게임에 머리를 박고 있는 지하철 장면은 실로 귀기(鬼氣)까지 풍긴다.
한 건의 스캔들이 터졌다 잊혀지는 데는 열흘도 긴 것 같다. 윤창중 사건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니 그런 사건이 있기나 했던 것일까. 일제히 달려들어 돌팔매질을 해대다 다른 사건이 터지면 또 그쪽으로 몰려가 집단광기를 풀어대는 신경병적 증후군이 만연한 아큐들의 사회다. 사회 전체가 일종의 자동반응 장치다. 논리의 전후나,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는 과정은 생략된 채 끓어올랐다가 꺼지기를 반복한다. 숙고와 반추의 과정은 반사회적 반민주적 비대중적 완고성으로까지 해석된다.
복잡한 경제현상에 대한 몰이해를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경제에 민주화라는 단어를 덧붙이자 누구나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애써 논리를 포장할 필요도 없어졌다. 반경제적이거나 반시장적 주장일수록 경제민주화 운동에 더욱 가까워졌다. 민주주의의 남용이 아니라 차라리 중국식 문화운동이요, 나치즘적 대중독재가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다. 경제를 죽이는 온갖 조치들 및 정부 규제와 사회적 압력과 비효율들이 민주화 간판을 달기만 하면 당당하게 발언권을 얻고 있다.
1987년 제1차 경제민주화가 만들어낸 것은 노동시장의 기득권 체제였다. 87체제에는 자유민주주의와 대중민주주의가 한동안 혼재해 있었다. 그러나 점차 대중 노선으로 달려갔다. 결국 제조업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고, 생산기지는 중국으로 탈출했다. 넘치는 자영업과, 양산되는 비정규직과, 협소한 국내 시장은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지금 2차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대한민국은 여기까지…!”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 같다. 기어이 전근대적, 촌락적 세계로 돌아가자는 퇴행의 몸부림이 바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다수 대중의 열렬한 지지다.
촌락 공동체적 경영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 운동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거대 시장과 현대적 조직 원리를 받아들이는데는 당연히 약간의 분석적 객관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집단지력의 부족은 조합주의적 골목사업으로 한국 경제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운동을 정당화한다. 국민소득 4만달러가 요구하는 고도화된 사회계약적 질서는 너무 냉정해서 싫다. 한국인은 이제 소득 1000달러 수준의 경제와 그것에 걸맞은 행동양식으로 돌아가는 일이 남았다. ‘우리가 남이가’ 식의 따뜻한 질서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동반성장이요 경제민주화다. 자애로운 어버이처럼 국가가 개인의 사적계약에까지 일일이 개입하여 판단해주고 지도해주는 그런 질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만들어 냈던 어버이 수령 국가는 결국 앞서간 경제민주화의 변종이다. 아마 그것이 주자학적 공동체주의에 오랫동안 훈련받은 한국인의 체질에 더 맞는 것 같다. 서구적 근대성을 거부하는 정서는 확고하다.
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 혁명을 이루어낸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찬사가 실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점도 확실해졌다. 개인의 행동과 전체적 결과가 조화를 이룬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 원리’를 한국에서는 기독교도들조차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사라지고 정부 규제라는 보이는 주먹(visible fist)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보이는 주먹’의 저작권자는 전광우)
그렇게 과잉 입법과 입법부 독재 시대가 열렸다. 금배지들은 이번 6월엔 대중의 증오와 질투를 모조리 법으로 만들어버릴 태세다. 다수결이기만 하다면 오전엔 사형을, 오후에는 사형금지를 법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의회독재 아래에서 시장도 민주주의도 파괴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진정 여기까지라는 말인지.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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