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홍영식 정치부장 참석자
獨 물가안정위해 긴축…美·日도 양적완화 활용…통화동맹 유럽은 정책 한계
포퓰리즘적 복지공약…인프라 투자에 예산낭비…유럽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그리스 국영기관 민영화…중국·독일펀드 적극 참여…한국기업도 투자 기회
“유럽 경제위기 극복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연금 및 사회복지 지출에 대한 구조개혁이 성공할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한 국민의 뜻을 묶어내는 정치리더십도 절실하다.”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했던 이혜민 주프랑스, 오대성 주스페인, 신길수 주그리스 대사는 지난 2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한국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유럽 재정위기 3년이 지났다. 현지 상황은.
▶신길수 그리스 대사=유럽 경제위기에서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그리스는 지난 5년간 연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전체 실업률이 27%, 특히 젊은 층의 실업률은 50%를 넘을 정도다. 정부가 연봉 삭감, 연금 축소, 복지혜택 축소 등의 경제회생 정책을 추진 중이고 다행히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 올해가 마지막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경제 개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면 5년쯤 뒤에는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대성 스페인 대사=스페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청년실업은 57% 수준이다. 수도인 마드리드보다 안달루시아 등 남부지역이 더 심각하다. 스페인은 1년에 5700만명의 관광객이 세계에서 몰려와 경제위기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해주고 있다.
▶이혜민 프랑스 대사=프랑스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1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보여 경기침체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유럽의 병자’로 1980년대에는 영국이, 2000년 초에는 독일이 꼽혔는데 지난 연말 이코노미스트지가 프랑스를 꼽았다. 대학 졸업자의 실업률이 25%에 이르는 것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때문에 올랑드 정권이 출범한 지 1년을 넘겼는데 사회당 정부로서 사상 최저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세계 5위 경제규모로 워낙 기초가 탄탄하다. 프랑스가 구조개혁에 성공한다면 영국이나 독일처럼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긴축재정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대사=독일은 기본적으로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두기 때문에 긴축재정을 주장한다. 반면 다른 나라는 경제가 어려울 때는 완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정책적 수단이 제한적이다. 미국과 일본이 모두 양적완화를 활용했지만 유럽은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묶여서 그렇게 하기 힘들다. 통화동맹 체제여서 환율정책을 쓸 수도 없다.
▶오 대사=독일 등 북부 유럽국가와 경제위기에 처한 남부 유럽국가 사이에 인식 차이가 있고 신뢰관계도 부족한 것 같다. 북부 국가들은 남부 국가의 재정 관리에 문제가 있다. 긴축·개혁을 통해 정비한 뒤 성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개혁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오는 9월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국내 정치적 요소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EU 통합의 한계다. 긴축 압박을 받고 있지만 스페인은 지방정부에서 반기를 들고 있다. 스페인은 지방정부가 교육·보건 등을 주도해 왔는데 이걸 줄이면 정치적 기반이 침식당하게 되니 정책을 바꾸기 어렵다.
-유럽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국민의 태도는 어떤가.
▶신 대사=그리스가 우리나라와 가장 대비되는 듯하다. 초기에는 과격한 시위가 많이 나왔는데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리스에서는 경제위기가 정치인의 잘못으로 시작됐다고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개혁정책에 반발이 심했다. 정부의 개혁정책이 추진되면서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시위가 있긴 하지만 아테네 중심부에서 평화적으로 일어나는 정도다.
-정치리더십이 중요한 것 같다.
▶오 대사=내가 스페인에서 한국의 노·사·정 합의,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들 부러워한다. 스페인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정치 리더십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각자 본국의 이익만 주장하면서 유럽의 위기 해결이 꼬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사=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핵심은 구조개혁을 할 수 있느냐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연금 개혁, 사회복지 지출의 구조조정을 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총의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요소는.
▶오 대사=유럽 경제위기는 결국 정치에서 나왔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포퓰리즘적 복지 공약을 들고 나오면서 경제위기에 부딪혔고, 국민이 도탄에 빠지는 결과를 불러왔다. 지금 스페인에서도 정부 여당을 비롯해 직전에 정권을 잡은 사회당에 국민 90% 이상이 불신한다. 스페인은 부동산 활황 정책을 쓰는 과정에서 정치부패 스캔들이 심했다. 방만한 대출로 부실저축은행이 양산됐다. 지방정부가 과도하게 철도, 문화센터, 공항 등의 인프라에 투자하면서 재정위기의 원인이 됐다. 스페인에 있는 47개 지방공항 중 절반이 닫혀 있을 정도다. 합리적인 수요를 예측하지 않고 과도하게 인프라에 투자해 예산을 낭비하는 데 대해 중앙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나라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 대사=한국이 복지를 확대하면서 유럽의 시행착오 과정을 되새겨 봐야 한다. 프랑스는 가족수당을 소득과 관련 없이 일률적으로 주다가 이제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없애기로 했고, 영국 역시 고소득층에 대한 지급 규모를 축소했다. 복지를 확대하되 소득에 따라 차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영화하는 국유기관에 중국 투자가 늘고 있다.
▶신 대사=중국뿐 아니라 아랍지역 펀드, 독일지역 펀드 등이 그리스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그리스에 투자할 좋은 기회다. 오는 7월에 국내 증권사 대표로 구성된 대표단이 그리스를 방문해 투자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그리스 측에도 한국에서 투자설명회를 열도록 건의하고 있다.
-유럽 재정 위기 전망은.
▶신 대사=곧 회복될지에 대해 비관적으로 본다. 그리스는 예산의 상당 부분을 복지 부문에 지출하도록 돼 있어서 재정 운영면에서 제한이 있다. 때문에 재정 적자가 나지 않도록 하는 소극적인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 각 부문의 생산성 증대를 통해 수출산업을 키우고, 정부 자산을 민영화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이뤄져야 그리스 경제가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
▶이 대사=이번 위기를 통해 단일통화의 문제점이 부각됐다. EU 회원국의 재정건전성 확보와 회원국 간 경제정책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웠다. 유로존 17개국의 경제정책을 공조할 정치 리더십이 전제된다면 이번 위기 회복 과정을 통해 EU 통합이 공고화될 수도 있다.
정리=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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