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의회 권력] 법안 '귀동냥'이라도 하려니…국회 보좌진도 기업엔 '슈퍼 甲'

입력 2013-05-27 17:11   수정 2013-05-28 04:01

가족 청첩장 돌리고 공짜 상품까지 요구
보좌관 출신 영입해 對官 업무 맡기기도



정치권에 경제민주화 입법 바람이 불면서 국회가 또 다른 ‘슈퍼 갑(甲)’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나 비서관 등 보좌진까지 법안 방향과 처리에 관여하면서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 것이다. 이를 이용해 기업들에 각종 비공식 혜택을 요구하는 등 일부 보좌진의 ‘갑질’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이에 응하거나 아예 국회 보좌진을 영입하면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슈퍼갑 국회 보좌진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모 의원실 비서관은 업무와 관련이 있는 기업 등에 가족의 결혼식 청첩장을 돌렸다. 국회와 정부부처를 담당하는 대관(對官)업무 직원들은 이를 두고 골치를 앓고 있다. 국회 정무위는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법을 다루는 상임위다.

한 관계자는 “요즘은 국회의원 자녀들도 알리지 않거나 축의금을 받지 않고 조용히 결혼하는데 청첩장을 받고 이름을 확인한 순간 깜짝 놀랐다”며 “자신의 결혼식도 아닌 가족의 결혼식 청첩장을 돌리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불만은 많지만 성의 표시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회 보좌진이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 이용 등을 공짜로 요구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한 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는 “신제품이나 회사 콘도 이용에 대해 할인해 달라는 요구는 어쩔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신상품이 나올 때를 맞춰 전화해 노골적으로 공짜로 요구할 때는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이 이처럼 ‘하을(下乙·을 중에서도 낮다는 의미)’로 지내는 건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각종 입법이 난무해 의원이 아닌 의원실 보좌진에게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몇몇 의원을 제외하면 사실 입법에 대해 모르는 의원이 많다”며 “의원은 입법 방향을 지시하고 실무는 보좌진이 알아서 하는 경우도 많고, 방향 지시에도 보좌진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 대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는 “예전부터 가깝게 지냈던 보좌관이나 비서관도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되면서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는 게 안 좋게 비쳐질 수도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며 “보좌진으로부터 말 한마디 듣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고 했다.

○기업들, 국회 보좌진 영입 나서

기업들은 이렇게 ‘갑질’을 들어주거나 아예 이들 국회 보좌진을 영입하고 있다. 주로 대기업에 해당한다. 파악된 것만 따져도 19대 국회 들어서 20명 안팎의 국회의원 보좌진이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보좌관은 “17대나 18대 국회에 비하면 많은 숫자로, 대부분의 보좌진이 여기저기서 영입 제안을 한번씩 받곤 했을 것”이라며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 주도가 주 이유”라고 말했다.

영입 대상은 주로 정책에 능하고 금융과 산업 관련 법을 처리하는 정무위나 환노위 상임위에서 통과한 법이 마지막으로 심사되는 법사위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보좌진이다. 19대 국회 들어 여당의 재선의원실 비서관은 H기업, 여당의 중진의원실 보좌관은 I기업, 여당 재선의원실 보좌관은 C기업, 야당의 초선의원 보좌관은 모 금융협회로 최근 이동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일감몰아주기나 하도급법, 순환출자 대리점법 등 그룹과 관련된 입법사항의 국회 상임위와 의원실 동태를 보고하며 기업의 입장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야당이 반대하면 법안이 통과가 안 되는 내용의 국회선진화법 시행을 계기로 최근엔 야당 소속 의원 보좌관들이 주로 영입되고 있다. 야당 소속의 초선·재선·중진의원실에선 보좌관들이 S그룹의 각 계열사로 최근 이직했다. 영입 제안을 받은 한 야당 의원실 보좌관은 “옮기면 기업 업무 경험도 할 수 있고, 보좌진은 4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데가 정해져 있어 고민이 된다”며 “요즘은 영입 조건도 좋다”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회가 여야 구분 없이 을의 눈물이니 을 지키기니 하다가 정작 자신은 갑의 역할을 하고, 그 회사로 간다는 건 모순”이라며 “해당 기업을 감시하는 보좌진이 곧바로 기업으로 가는 건 정치인들이 지적했던 또 다른 ‘전관예우’ 아니냐”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산업부 이태명·정인설 기자, 정치부 김재후·이호기·이태훈 기자, 경제부 김주완 기자, 지식사회부 양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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