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의회 권력] 의원실 "왜 왔어요? 자료 두고 가세요"…쟁점 법안엔 '요지부동'

입력 2013-05-29 17:04   수정 2013-05-30 02:44

(3) 입법 소통채널이 없다

상당수 의원 "같은 논리 되풀이…만날 필요있나"
전문가 "로비스트 양성화 등 소통채널 넓혀야"




여의도 국회의사당 왼편에는 의원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 5층, 지상 10층짜리 이 건물에 300명의 ‘선량(選良)’들이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의원실 ‘문턱’은 늘 붐빈다. 정부부처 공무원들과 기업 대관 담당자들, 민원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의원들의 입법에 각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다. 의원들은 “입법으로 수혜를 보는 쪽과 피해를 당하는 쪽의 입장을 대체로 균형있게 들으려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원들이 ‘귀’를 잘 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과 관련해선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경제계의 주장이다.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한 하도급법 개정안 의견수렴 과정을 보자. 이 법안은 부당 하도급 행위 제재 범위를 확대하고,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관 법안이다. 관련 입법안은 작년 5~9월 진영·오제세·홍영표 의원 등이 총 7건을 내놨다. 산업 현장의 하도급 관행에 큰 영향을 끼치는 법안인 만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들을 대신해 의회 대응창구 역할을 맡았다.

정무위는 작년 11월12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본격적인 심의를 시작했다. 첫 법안심사소위에는 위원장인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과 강석훈·김용태·김종훈(이상 새누리당)·민병두·이상직·정호준(이상 민주당) 의원 등이 모두 참여했다. 전경련은 소위 개최 직전 새누리당 의원실에 ‘경제계 의견’ 자료를 보냈다. 의원 보좌관들과 면담도 가졌다. 전경련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경제계 입장을 그래도 잘 이해해준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실에는 찾아가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실에 가면 ‘왜 왔어요? 알겠으니 자료 놔두고 가세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우리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다”(전경련 국회 대응팀)는 이유에서다.

정무위는 11월19일과 올해 2월13·19일 세 차례 더 법안심사소위를 열었고, 이때마다 전경련은 경제계 입장 자료를 들고서 의원들을 찾았다.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만이었다.

3월11일엔 정무위 주최로 하도급법 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네 명. 법안에 찬성하는 쪽에선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전략경영연구실장과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 반대하는 쪽에선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가 나왔다. 관심이 많은 법안이라 정무위 소속 의원 24명 중 15명이나 참석했다. 공청회 분위기는 일방적이었다. 강석훈·김용태·김종훈 등 새누리당 의원 3명 빼고는 모두 찬성 쪽이었다고 한다. 전경련 국회대응팀 담당자는 “5개월간 우리 논리를 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며 “하도급법 개정안대로라면 중소기업도 큰 피해를 본다는 경제계 주장이 꽤 설득력이 있는데도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60세 정년연장법 처리 과정도 비슷했다. 작년 7~8월 5건의 의원입법안이 발의된 직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경제계를 대표해 7개월여간 의회 대응에 나섰다. 경총 의정대응팀 관계자는 “예전엔 경제계 의견이라고 해도 귀를 열어 듣는 의원들이 상당했는데 지금은 다르다”며 “정년연장에 대한 기업 의견을 들고 가도 의원들이 만나주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년연장법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 노동계 출신 의원이 많은 것도 우리(경제계) 목소리가 먹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이런 지적을 의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상직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전경련이나 기업 등에서 만나자고 할 때 거절한 적도 없고 다 듣고 참고한다”며 “하도급법은 공청회도 열고 기업들의 의견도 들었는데, 의원 입법이 마구잡이라고 지적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굳이 만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대체로 많았다. 4월 국회 때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A 의원실 보좌관은 “법안에 대한 재계 주장이 언론보도로 다 나오는데, 그에 대해 또다시 기업이나 경제단체의 입장을 듣거나 문의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민주당 B의원은 “법안을 만들기 전에 해당 기업을 만나면 그쪽 논리에 경도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전경련이나 경총 등 경제단체가 “기업이 다 죽는다”, “경제가 어렵다” 등 같은 논리만 되풀이한다는 지적이다.

꼭 필요하다면 경제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는 의원도 있었다. 경제민주화 1호 법안(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은 “기업들이 시급한 문제라면 보좌관을 통할 게 아니라 의원에게 직접 면담을 요청해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국회와 경제계의 ‘불통’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지금처럼 입법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방법이 공청회와 국회청원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원들의 비공식적인 의견 수렴·청취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처럼 로비스트 제도를 양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부작용도 있지만 지금은 국회에 각계의 의사를 전달하는 창구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는 “로비를 꼭 나쁘게 볼 건 아니다”며 “의원들이 특정 주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순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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