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부패·비리에 "불안해서 못 살겠다" 원전 찬성 주민들도 돌아서
“정품 제어케이블을 가져와야 공사에 들어갈 수 있는데 아직 오지 않아 마냥 작업준비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2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고리원자력본부. 불량 제어케이블 설치 탓에 이날 오후 5시 가동이 완전히 정지된 신고리 2호기의 중앙제어실 직원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불량부품 문제로 가동이 정지되는 사태가 벌어져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다”는 한 직원은 “전력 확보에 비상이 걸려 있지만 현재로선 시급하게 수리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전 1기에 설치된 제어케이블은 총연장이 5㎞에 이른다. 불량 제어케이블을 걷어내야 하는 데다 새로 설치할 정품 케이블을 구하는 데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다른 업체 제품을 공급받으려 해도 완벽한 검수가 필요하다. 제어케이블은 원전 사고가 날 때 원자로 내 핵연료의 냉각을 막고,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안전설비를 가동시키는 핵심 부품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수원이 4~6개월 후에야 원전을 재가동할 수 있다고 발표한 이유다.
신고리 1호기와 2호기가 함께 가동 정지되면서 부산지역은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8일부터 정기 점검을 위해 가동이 정지된 1호기는 당초 이달 중순께 재가동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호기에도 불량 제어케이블이 납품된 것으로 드러나 정지 기간이 연장됐다.
다른 직원은 “신고리 1, 2호기의 전기 생산량은 총 200만㎾”라며 “이는 부산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하루빨리 재가동되지 않을 경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신고리 원전이 직원들의 부패와 불량부품 등으로 안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가면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기장군청년회는 원전 인근 도로에 ‘(수명이) 4년 남은 신고리 1호기, 4000억원 부품교체가 웬말이냐’라는 문구 등을 쓴 수십 개의 검은 현수막을 설치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원전 반대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정종복 기장군의회 원자력안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신고리 원전의 부패와 문제점이 계속해서 드러나자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던 주민들조차 원전 반대로 돌아서면서 민심이 불안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이유로 이날 가동이 정지된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의 신월성 1호기 주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원전 정문 입구부터 철저하게 외부인 출입을 통제해 사건의 심각성을 말해 주는 듯했다. 지난해 7월 본격 상업운전에 들어간 신월성 1호기는 가동 19일 만에 제어봉이 고장나는 대형사고를 일으켰다. 이날까지 총 다섯 차례 가동이 중단돼 안전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인근 양북면 봉길해수욕장에 모인 이종대 나아리 이장, 이재현 양남면 이장단 협의회 총무 등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와서 나아지기는커녕 살기만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정부와 한수원이 약속을 번번이 어기니 어떻게 그들의 말을 믿겠습니까.”
이상홍 경주핵안전연대 사무국장은 “상업운전 이후 고장이 자주 발생해 근본적인 안전진단을 요구했는데도 한수원이 이를 무시한 채 신월성 1호기를 가동, 고장이 잇따랐다”며 “이젠 불량 부품을 사용했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불량 부품 사용은 정부와 한수원의 원전 안전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
부산=김태현/경주 김덕용 기자 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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