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인맥찾기'에 부산한 은행원들

입력 2013-06-02 17:10   수정 2013-06-03 00:02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최근 2~3년 새 고졸 행원 채용, 청원경찰 출신 지점장 임명 등 여러 파격적인 인사실험을 했다. 그중 하나가 입사 4~5년차에 불과한 대리급 행원 두 명을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지점에 발령낸 일이다. 당시 해외로 가게 된 두 명은 경기 군포와 안산공단 지점 출신이었다. ‘잘나가는’ 본점의 기획이나 재무파트가 아닌 영업현장에서의 발탁은 당시 은행가에 적잖은 화제를 뿌렸다.

이에 대해 조 행장은 “일본 지점에서 근무한 경험을 돌아보면 해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열심히 일하려는 근성”이라고 말한다. “해외 발령을 위해 본점 주요 부서에 들어오려고 로비한 사람보다, 눈코 뜰 새 없이 영업현장에서 뛴 직원들을 평가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연해 보이는 조 행장의 이 같은 능력 위주 인사가 은행가에선 여전히 낯선 장면이다. 기업은행 사례가 지금도 회자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승진하려면 실력보다 인맥이라는 시각이 금융가에 확산되고 있다. 이는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금융지주 회장 선임전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회장 취임에 이어 연쇄적으로 단행될 임직원 인사를 앞두고 부행장·본부장·부장들 사이에선 ‘줄타기’를 잘 하기 위한 ‘합종연횡론’이 들려오고 있다. 충성(?)으로 모시던 상사가 밀려나게 되자 다른 줄을 찾기 위해 애타게 돌아다닌다는 소식도 드물지 않다.

새 회장이 정해진 우리금융에서는 전임 회장 쪽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수면 아래서 끓고 있는 모양새다. 회장 선출이 임박한 KB금융지주도 사정은 비슷하다. 차기 회장 후보로 유력하게 떠오르는 몇몇 인물들을 사이에 두고 직원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지금은 일로 승부하는 시기가 아니다’며 줄 대기에 열중하는 움직임은 차장급 실무자로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학연 지연 등 동원할 수 있는 줄을 하나라도 더 찾느라 바쁘다. 국민은행의 한 부행장은 “차장급 이상은 이곳저곳에 한 발을 걸치고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자조했다.

‘한국 금융은 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세계적인 기업이 못 되는가’라는 비판에 금융회사들은 제조업만큼 지원을 해주는 게 우선이라는 반론을 펼쳐 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업무와 일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인맥 중심으로 이뤄지는 후진적 인사시스템으로는 ‘선진금융’이 요원할 것 같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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