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엔 단기 악재, 중장기 호재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흔히들 출구전략만큼 추진 시기와 선택 수단, 사후 처리 등 정책의 삼박자를 맞추기가 어려운 것도 없다고 한다. ‘출구전략은 정책 예술(exit strategy is policy art)’이라고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이 정책 삼박자 간의 ‘황금률’을 지키지 못할 경우 경제를 안정시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경제를 크게 망치는 대실패를 초래한다.
앞으로 추진될 출구전략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국내 증권시장에서 많이 알려진 대로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대책’으로 이해한다면 지금까지 추진했던 모든 대책이 출구전략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출구전략은 ‘위기 이후 상황을 겨냥한 선제적인 정책’으로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후자대로 정립한다면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것과 추진하는 시기는 구별된다. 모든 정책의 시차를 감안하면 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 가는 단계에서 출구전략을 논의하고 마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다. ‘빅 스텝(big step)’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정책 등으로 상징되는 금융위기 대책이 워낙 강도가 컸던 만큼 위기 극복 이후에 마련하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특정국의 금융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극복해야 한다.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단계를 10이라고 하면 7부 능선을 지날 때부터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은 금융위기 극복이 이 단계에 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출구전략이 마련됐다고 해서 곧바로 추진한다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이제 막 위기를 극복하고 경기회복의 가닥이 잡히는 단계(green shoot)에서 한 나라 경제의 거름에 해당하는 돈을 거둬들이면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다시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닥치면 경기가 복합 불황에 빠지고 위기가 재발한다.
대표적인 예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1980년대 초 ‘볼커 실수’와 함께 양대 실수로 꼽는 ‘에클스 실수’가 있다. 1930년대 매리너 에클스 Fed 의장은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자 이후에 찾아올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우려해 너무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추진하면서 결과적으로 대공황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미리 마련한 출구전략을 언제 추진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추진 시기를 결정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전기비와 전년 동기비로 산출되는 성장률이 2분기 연속 ‘플러스’로 돌아서고, 그 수준이 잠재성장률에 근접할 때를 가장 적기로 꼽는다. 이 경우에도 자산부문 거품과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출구전략을 추진할 경우 기준금리를 곧바로 올리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다. 통화정책에서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것은 가장 급진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다. 기준금리 변경은 경제 주체들이 처한 개개의 사정과 책임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 전반에 일방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규모 금융위기 이후 거론되는 출구전략은 과잉 유동성에 따른 자산부문 거품과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 보통 때처럼 경기 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이 아닌 만큼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라는 가장 큰 목표를 훼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현재 처한 여건과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감안해 출구전략을 단계별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위기 대책과 관계없이 출구전략을 빨리 시작할 수 있는 착시현상부터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 주체들에게 사전에 예고하는 ‘립 서비스’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뒤 계속해서 자산부문 거품과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면 금리를 곧바로 올리기보다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것이 순서다. 일몰조항 정책은 시한이 다가오면 더 이상 연장하지 않는다. 통화정책면에서는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 재정정책면에서는 ‘유수정책(誘水政策)’을 종료하는 것도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에 해당한다.
소극적 의미에서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에서는 ‘리버스 오퍼레이션(reverse operation)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다. 장기채 매입을 통해 장기금리를 떨어뜨려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풀린 돈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단기채를 매도해 흡수해 나가면 남아 있는 위기 극복과 비상대책의 후유증을 미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구전략이 계속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가서 유동성 환수나 금리 인상과 같은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금리정책은 미국처럼 금리 체계가 잡혀 있는 국가에서는 기준금리를, 중국처럼 은행 위주의 금융산업 구조를 갖춘 국가들은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갈수록 세계 증시에 최대 변수가 될 출구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추진될 것인가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출구전략은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라는 본질은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출구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증시에 악재가 될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주가를 끌어올리는 호재로 인식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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