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회에 용량 측정 표준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삼성전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냉장고 용량 분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유튜브에 냉장고 용량을 비교하는 동영상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LG전자가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데 이어 양측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오는 7일 손해배상 소송의 2차 공판이 예정돼 있지만 두 회사는 여전히 서로 등돌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LG가 소송을 취하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먼저 때린 삼성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두 회사의 첨예한 입장 차 외에도 냉장고 용량 기준이 국가별로 제각각인 점도 논란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탁기와 에어컨도 국가별 기준이 달라 업체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다.
◆냉장고 체급법 한국과 미국 달라
냉장고 용량 측정법은 크게 한국식과 미국식, 대만식으로 나눌 수 있다. 세 나라 모두 가로와 세로, 높이를 곱해 부피(㎤)를 산출한 뒤 리터(ℓ)기준으로 바꿔 표기하는 총론에선 같지만 각론에선 조금씩 다르다.
한국은 ‘퍼즐 맞추기’ 방식을 쓰고 있다. 다르게 생긴 모형을 서로 맞춰서 설계도상 냉장고 내부 크기를 재는 식이다. 일정한 크기의 이 모형들로 잴 수 없는 면적은 용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냉장고에 있는 조그만 틈새까지 사용하지 않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숫자를 표기할 때 소숫점 이하는 버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한국 뿐 아니라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 방식을 쓴다. LG전자가 “삼성이 국제 공인 기준을 따르지 않고 ‘물 붓기’라는 국적불명의 방법을 썼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냉장고를 눕힌 뒤 물을 부어 용량을 측정한 삼성 방식과 가장 비슷한 기준은 대만식이다. 대만은 냉장고에서 분리할 수 있는 부품은 전부 제거한 뒤 치수를 측정해 냉장고 용적을 계산한다. 그렇다고 물 붓기를 쓴 삼성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사용할 수 없는 부분은 용적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식과 대만식을 혼용한다. 기하학적 모형으로 가로와 세로, 높이를 잰다는 점에선 한국과 같다. 반면 길이를 잴 때 16분의1인치(약 2㎜)를 미리 빼고 측정하는 것은 사용할 수 없는 내부 면적을 제외하는 대만과 흡사하다. 미국식은 캐나다, 멕시코 같은 북중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통용된다.
◆세탁기 기준도 천차만별
세탁기 기준은 냉장고 표준보다 좀 더 개성적이다. 우선 삼성이 냉장고에 쓴 물 붓기 방식은 미국 세탁기 스타일이다. 미국은 세탁기에 흘러 내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물을 가득 채워 세탁기 내부 용적을 표기한다. 이 때 세탁기 작동 여부는 고려되지 않는다. 또 한국식 부피 단위(㎤)가 아닌 미국식 세제곱피트(큐빅피트)로 측정한다. 용량(㎏)은 따로 표기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과 유럽은 용량을 제 1기준으로 쓰고 용적은 병기한다. 용량도 물 붓기가 아닌 세탁기 작동을 통해 검증한다. 국제 기준으로 정한 시험포(시트, 수건, 베개)를 해당 용량만큼 세탁기에 넣은 뒤 제대로 돌아가는 지를 시험한다. 이 때 제조업체가 표기한 에너지 효율등급을 충족하는 지도 살펴본다.
다만 용적이 필수 사항인 지 여부는 한국과 유럽에서 좀 다르다. 한국은 법 개정을 통해 작년부터 용적을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이에 비해 유럽에선 용적 표기가 선택 사항이다. 만약 유럽 소비자가 세탁기 용적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 해당 제조업체는 반드시 성능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에어컨은 국가별로 성능 기준이 다르다. 냉방 가능한 면적(㎡)을 사용하는 나라도 있고 냉방 용량을 쓰는 국가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나라나 대륙별로 가전 제품 표준이 다르지만 해당 국가에서 정한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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