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권하는 대학 고작 20%… 고학력 실업 문제, 스타트업 교육으로 풀 수 있어
아이디어·자본·의지 몰리는 대학이 창업 교육에 최적
학생들 네트워크 구축 도와야
한경·NRF 한국연구재단 공동기획
대학 창업교육 막는 사례
#1. 서울대 경영대학은 최근 기업가정신을 가르치고 창업을 북돋우는 ‘창조경영학과’ 신설을 교육부에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교육부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서울대에만 새로 정원을 내줄 수는 없다. 학내에서 알아서 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학생들이 죄다 로스쿨과 고시 공부만 하는 현실을 타개하려면 새로운 과정이 필요하다”는 김병도 서울대 경영대학장의 주장은 ‘새 정부 코드에 편승해 정원을 늘리려는 꼼수’라는 비판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대학 창업교육 성공 사례
#2. 야구 선수를 하다 고3 때 어깨 탈골로 그만둔 김성태 씨(29). 야채 트럭, 택배 등 생업에 종사하던 그는 26세의 나이에 한양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는 이 대학 글로벌기업가센터의 기업가 육성 과정인 ‘스타트업 아카데미’ 과정을 거쳐 사회인 야구 리그 관리 기업 ‘베이스볼 토털 솔루션’을 올 3월 창업했다. 김씨는 “스타트업 아카데미에서 동문 선배들로부터 다양한 조언을 받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창조경영학과 신설 무산은 창업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창업은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괴짜 천재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는 김씨를 비롯해 지난해부터 5건의 ‘평범한’ 창업을 성공시켰다. 창업 교육의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대학이 창업 교육 최적지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2월 고등교육기관(전문대~대학원) 졸업생 56만명의 취업률은 59.5%다.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심화되고 있는 데다 불황이 겹치며 고학력 실업 문제는 갈수록 심각하다. 대학가에선 ‘스펙 7종 세트(학벌, 학점, 외모, 외국어, 봉사활동, 공모전, 인턴, 성형)를 갖추지 못하면 취업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까지 나온다. 구직난이 지속되면서 창업이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학이 체계적인 창업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실은 실망스럽다. 교육부의 대학정보공시사이트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에 따르면 전국 197개 4년제 대학에서 배출된 학생창업기업 수는 2010년 145개에서 2011년 225개로 늘었다. 학생창업기업 수는 늘었지만 정부와 대학의 창업지원 금액은 2010년 132억원에서 2011년 139억원으로 비슷했다. 창업 전담 교수는 2010년 203명에서 2011년 159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창업교육센터를 운영하는 대학은 42개(2011년 기준)로 전체 197개 대학의 5분의 1에 그친다. 한 사립대 창업교육센터 교수는 “반값 등록금 이슈가 제기된 뒤 재정이 경직되면서 상당수 대학이 창업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창업 교육 핵심은 네트워크
국내에서 가장 먼저 체계적인 창업 교육에 나선 대학은 2004년 기업가정신연구센터를 개설한 KAIST다. KAIST 기업가정신연구센터는 기업가정신 관련 교과목을 개설하고, 창업경진대회 등을 열었다. 특히 이공계 학생에게 경영, 경제, 법 등을 가르치는 경영·경제(BE)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사립대 중에선 한양대와 호서대 등이 앞서 나가고 있다. 한양대는 2009년 7월 기존 창업보육센터 기능을 통합해 대학 전체의 창업과 기업가정신 교육을 전담하는 글로벌기업가센터를 설립했다. 모두 기업 출신인 전임·특임 교수 17명이 소속돼 있다. 한양대 공대생 전원(학년당 약 1000명)은 글로벌기업가센터가 개설한 ‘테크노경영학’ 과목을 3학년 때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글로벌기업가센터가 운영하는 6개월 창업 과정인 스타트업 아카데미는 매 기수 경쟁률이 4~5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류창완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장은 “창업의 핵심은 아이디어와 자본, 창업 의지가 만나는 네트워크”라며 “테크노경영학과 스타트업아카데미에 동문 기업인을 초청해 멘토를 하도록 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학원에도 창업 트랙 마련해야
석·박사급 고급 인재에 대한 창업 교육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현재 교육부는 대학원 창업 현황은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1년 대학원생 25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원 진학 이유는 ‘전공 공부 지속’이 64.7%로 가장 많았다. ‘좋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도 24.6%에 달했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스탠퍼드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만나 창업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 창업자인 스콧 맥닐리도 스탠퍼드 대학원 시절 동업자를 구했다. 생계형 창업이 아닌 고용을 창출하는 성장형 창업이 많아지려면 석사 이상 고급 인력의 창업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대학원생 수는 2000년 22만명에서 지난해 32만명으로 1.5배나 늘었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순수 학문 위주로만 이뤄져 있는 국내 대학원 과정에 창업 트랙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문 등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중심인 기존 학술 트랙은 유지하되 기업가정신 프로그램과 창업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창업 트랙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카네기멜론대 등은 대학원에서 이미 창업 또는 벤처 트랙을 운영하고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 [초대합니다] 스트롱코리아 창조포럼 2013
▶ [스트롱 코리아] 글로벌 스타트업 길러내는 미국 대학의 힘…밥슨칼리지, 10년간 5000개 벤처 배출
▶ [스트롱 코리아] 이공계 인재 초특급 모시기 경쟁…사장보다 월급 8배 주고 간신히 채용
▶ [스트롱 코리아] 수능 상위 0.1% 수재도 서술형 미적분 못풀어
▶ [스트롱 코리아] 실패 용인하는 문화 필요…획일적 평가방식 버려야 창의성 자라는 토양 생긴다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