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할 선진제품 드물어…'1등 삼성' 이젠 과거에서 배운다

입력 2013-06-06 17:07   수정 2013-06-07 06:47

인사이드 Story - 삼성 신경영 7일 20주년…혁신 역사 한 눈에 '이노베이션포럼'

선진제품 비교전시회 전면 개편…참담했던 '과거 불량품' 앞자리에
양에서 질로, 기술에서 감성으로…글로벌 1위 도약 과정·제품 보여줘



높은 불량률 때문에 무더기로 불태워졌던 무선전화기, 금형 문제로 모서리를 일일이 칼로 잘라냈던 세탁기, 부품은 많고 고장은 잦아 싸구려 취급을 받은 VTR, 그리고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미국의 가전 매장 한구석에 놓여 있던 TV.

우울했던 삼성의 과거가 신경영 20주년 축하연의 가장 앞자리에 초대됐다. 삼성전자가 신경영 선언 20주년 기념일인 7일 경기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개최하는 ‘삼성 이노베이션포럼’에 놓인 제품들이다. 제품 뒤편엔 ‘신경영의 출발’이란 이름이 붙었다. ‘불량은 암이다’ ‘참담함을 느끼다’란 문구가 당시의 위기감을 되새긴다.

이 행사는 삼성전자가 격년 단위로 개최해온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업그레이드한 행사다.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세계 1등 제품과 삼성 제품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만들었다.


1993년 2월 이 회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찾았다가 양판점 베스트바이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인 채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삼성 TV를 발견했다. 참담함을 느낀 그는 당시 김광호 삼성전자 사장, 윤종용 삼성전기 사장 등 전자 사장단을 즉각 호출해 눈으로 보게 했다. 제품 비교 평가회가 처음 열린 것이다. “자기가 만든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직접 봐라. 여기 어디에 놓여 있고, 먼지는 몇 ㎜나 쌓여 있고, 얼마에 팔리는가 봐라.”

몇 달 후 이 회장은 녹화된 사내방송 한 편을 봤다. 거기엔 잘못된 금형 탓에 세탁기 뚜껑이 맞지 않자 생산팀이 그 자리에서 칼로 모서리를 깎아 낸 뒤 출고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국내 1위 삼성이 지닌 국제 경쟁력의 현주소였다. 이 회장은 격노했다.

그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세계 8개 도시에서 68일간 350여시간에 걸친 회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맨날 밥 먹고, 옷 입고, 같은 넥타이 매고 있으니 변화를 못 느끼고 있어. 전 세계 일류 기업의 기술력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앞으로 4~5년 새 변하지 않으면 이제 영원히 못 변해. 마누라 자식만 빼놓고 다 한 번 바꿔 보자. 다 뒤엎어 보자.”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그렇게 나왔다.

그러나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불량률은 곧바로 개선되지 않았다. 1995년 무선전화기에서 대규모 불량 사태가 발생했다. 이 회장은 지시했다. 구미공장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거한 불량 전화기 15만대(500억원 규모)를 불태웠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애니콜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불량을 발견하는 즉시 생산라인을 멈춰 문제를 해결하는 라인스톱제가 생겼다. 품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해온 관행이 현장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노베이션포럼’에서는 이 같은 시련을 통해 성장한 삼성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다. 경쟁사 제품과의 비교 전시를 떠나, 올해부터 글로벌 1위 전자업체로 도약한 과정과 제품을 보여주는 행사로 바꿔서 열린다.

화면의 가로 길이를 늘린 ‘명품 플러스원 TV’에 이어 포도주병 모양 디자인으로 삼성 TV를 세계 1위로 이끈 ‘보르도 TV’ 등 삼성의 도약을 만든 제품을 찾아볼 수 있다. 최첨단 제품도 전시된다.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스마트TV’와 풀HD보다 네 배 더 선명한 ‘울트라HD(UHD) TV’도 볼 수 있다.

국내 최초 휴대폰인 ‘SH-100’뿐 아니라 휴대폰 세계 1위가 되기까지의 과정, 일상과 함께하는 스마트폰의 미래상도 제시한다. 1993년부터 세계 시장 1위를 지켜온 메모리반도체 사업도 빠지지 않는다. 1983년 11월 개발된 64K D램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첨단 제품으로 반도체입국의 계기가 됐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스마트폰용 최신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차세대 시스템반도체도 선보인다.

삼성만의 디자인과 친환경 철학, 광고 이야기 등을 보여주는 공간도 별도로 마련했다. 행사 기간 중 임직원들이 강연자로 나서 도전과 혁신을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열 예정이다.

이경태 삼성전자 기획팀 상무는 “이번 포럼에서는 기술에서 감성으로, 그리고 스마트한 삶의 동반자로 성장해온 삼성전자의 변화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창의적인 기술과 제품을 선보일지 예측해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 행사는 7일부터 내부 임직원들에게 공개되고 27일부터는 일반인과 협력사 관계자들에게도 공개된다. 참관하려면 10일부터 포럼사이트(www.2013samsungforum.com)에서 신청하면 된다.

윤정현/김현석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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