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슈퍼甲의 무소불위 입법 毒화살

입력 2013-06-06 17:33   수정 2013-06-07 04:57

시장경제 근간 흔드는 입법홍수…오만·무지의 정치적 자충수일 뿐
사적자치, 삼권분립 훼손 말아야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dkcho@mju.ac.kr



‘갑을관계’를 이슈화해 정치소득을 얻으려던 계산 빠른 정치권이 자충수를 뒀다. 갑을관계를 중립적으로 보면 ‘의뢰’와 그런 의뢰에 응답한 ‘반응’의 관계다. 이처럼 갑을관계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계약관계이므로 강자와 약자의 위치관계는 아니다. ‘라면상무’와 ‘욕설우유’ 사건이 터졌을 때 갑을관계를 정상화하는 ‘성찰의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갑을관계 문제의 본질은 ‘갑을문화’의 부재였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갑을관계의 문제를 호재 삼아 ‘갑은 강자, 을은 약자’라는 전형적인 2분법적 프레임을 견지했다. 하지만 갑을관계가 상대적 개념임을 간과했다. 그동안 당했다고만 주장하는 ‘을’도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포악한 ‘갑’이었을 수 있다. 갑을관계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은 정치권이야말로 그 위에 더 이상 ‘갑’이 존재하지 않는 ‘슈퍼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를 속박하는 것은 슈퍼갑 자신이다. 자기들이 가진 특권을 내려놓지 않은 채 ‘을의 눈물’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슈퍼갑 국회는 그동안 무수한 입법 화살을 쏘아댔다. 19대 개원 1년이 채 안 된, 지난달 20일 현재 의원발의 법안만 4443건에 달한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 313건의 14배다. 문제는 경제민주화에 편승한 이들 법안의 상당수가 시장경제의 근간을 허물고 사적자치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독(毒)화살’이라는 것이다.

국회는 행정부의 집행과 사법부의 재판을 통하지 않고도 권리·의무가 곧바로 확정되는 ‘처분적 법률’을 남발하고 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무상보육 비용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분담률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국가와 지자체 분담률을 70%, 30%로 명시했다. 비용 분담률을 정하는 것은 ‘행정’의 영역이다. 국회 입법은 정부가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그쳐야 한다. 재벌 총수의 집행유예를 사실상 금지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안도 사법부 판단을 배제시키는 처분적 법률과 다름이 없다. 표적입법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처분적 법률안을 남발하는 것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국회 사무처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갑을관계 논쟁에 편승해 발의된 가맹점사업법 개정안은 ‘사적자치’를 침해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가맹본부는 가맹점주에게 예상 매출액을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며 가맹점주는 단체협의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가맹본부와 가맹점주는 노사관계가 아니다. 법률로 매상을 ‘사실상’ 책임져주겠다는 발상은 상업세계의 리스크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새로운’ 가맹본부가 만들어질리 없고 ‘을’의 선택범위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을의 처지만 곤궁해질 뿐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협상에 ‘당(當)과 부당(不當)’은 성립하지 않는다. ‘후려치기’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의 천박함을 웅변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도 회사기회유용금지 차원에서 다루면 족하다. 지배주주의 사익추구로 여타 주주가 피해를 입었다면 사법인 ‘회사법’으로 규율하면 된다. 굳이 공법인 공정거래법을 동원할 이유가 없다. 규제의 첫걸음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지 않는 것이다. 금산분리 강화 차원에서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에 ‘대주주자격 심사제도’를 두겠다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경영판단과 배임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대주주 자격심사는 기업조직의 근간을 뒤흔드는 독화살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정치권의 입법 봇물에는 ‘설계’로 세상을 완벽하게 개조할 수 있다는 자만과 무모함이 배어 있다. 하지만 어떤 체계든 ‘잔류 수준’의 실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잔류 수준의 실패는 체계의 골간을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유격(裕隔)이다.

원칙과 상식은 사회유지의 보루다. ‘통념화한 몰상식(common nonsense)’이 여론의 힘으로 ‘상식’으로 변하는 순간 그 사회는 무너진다. 슈퍼갑의 ‘오만과 무지’에서 비롯된 입법 독화살은 부메랑이 돼 한국 경제에 꽂히게 돼 있다. 한국 경제 여기가 한계인가.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dkcho@mju.ac.k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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