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11> 송(南宋)이 금(金)나라의 멸망을 초래한 이유는?

입력 2013-06-07 15:30  


환율이란 한 화폐의 가격을 다른 화폐로 표시한 것을 의미한다. 한 국가의 화폐가 다른 국가의 통화를 기준으로 볼 때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 나타내는 척도라는 것이다. 즉, 화폐의 가치가 환율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들이 환율의 변화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떠한 이유로 한 국가의 화폐수요가 증가하면, 해당국의 화폐 가치는 높아지게(절상) 되고, 이는 외환 시장에서 환율이 하락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환율의 하락은 외국 시장에서 자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국내 시장에서의 수입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기 때문에 무역수지의 악화를 초래한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외국물건을 구입해 자국 시장에서 판매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국 화폐를 팔고 외화를 매입하게 된다. 이 같은 움직임으로 외환 시장에서는 자국화폐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고 그 가치는 점차 떨어져(절하) 외환시장에서 환율 상승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화폐가치의 변화는 환율의 변동을 초래하고, 이는 소비, 투자와 같은 경제주체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고대 중국사를 보면 환율이 제국 건립의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 특히 당나라의 경우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무역거래에서 금은 대신 직접 발행한 화폐를 사용했다. 당시 정치, 문화, 금융의 중심지였던 당나라의 장안은 해외 상인들이 왕래하는 지역으로 수많은 외국상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 자기 나라의 화폐를 가져왔기 때문에 시장에는 다양한 화폐들이 거래됐다. 이로 인해 전문적으로 외환업무를 담당하는 상인조직이 생겨났고, 당나라 화폐로 환전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당나라 상인들은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경제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환율이 경제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송·금 시대에 이르러서는 환율이 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 속성이 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 전국 유통지폐 발행

고대 중국사에서 남송은 강력한 무력을 가진 금나라에 매년 금은재화를 공물로 바쳐 명맥을 유지해 가는 국가였다. 부족한 무력 탓으로 굴욕적인 모습으로 역사를 이어가는 남송이지만, 전통적으로 상업이 발달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상거래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송의 업적 중 하나는 ‘회자’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전국 유통 지폐를 발행한 점이다. 금나라와의 지속된 전쟁, 공물 진상 등으로 인해 남송은 언제나 재정이 어려웠다. 전국에 유통되는 지폐의 발행권을 가진 남송 정부 역시 현대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지폐 발행을 통해 재정적자를 해결하고자 했다.

남송 정부는 저렴한 발행비용과 간편한 인쇄 덕분에 화폐 발행을 급속도로 늘릴 수 있었다. 한편 당시에는 위조 방지 기술이 없어 위폐도 증가했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폐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상품의 수는 늘어나지 않아 결국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통적으로 상업이 발달해 경제지식 수준이 높았던 남송답게 경제 전체가 나락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화폐의 발행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화폐 발생의 목적이 화폐 유통으로 상업을 촉진하기 위함이나, 오히려 상업의 발달을 방해하자 자체적인 지폐발행 계획을 세워 공급량을 조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일정 수준으로 조절돼 남송 경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고대판 환율전쟁 시작
반면 남송의 조공을 받는 금나라는 지폐발행 정책이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금나라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무력이 우위에 있는 국가였다. 따라서 전투능력에 비해 생산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전쟁을 일삼다 보니 국가경제가 생산이 아닌 약탈로 얻은 전리품 획득에 의존하여 운영됐다. 화폐를 사용한 구입과정 없이 빼앗아 왔기 때문에 화폐보다 상품의 수가 많아 금나라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문제는 금나라의 힘이 강해지면서 시작됐다. 강해진 무력으로 넓은 지역을 점령한 금나라는 더 이상 약탈할 국가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약탈을 통해 운영되는 국가경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위기를 느낀 금나라 역시 남송과 마찬가지로 지폐를 발행하여 국내에 유통시켰다. 하지만 경제지식이 부족했던 금나라는 지폐발행의 유혹을 절제할 힘이 없었다. 전쟁이 필요할 때마다 지폐를 대량으로 찍어냈고, 국고에 돈이 부족할 때마다 화폐 발행을 통해 해결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금나라의 지나친 화폐발행은 국부의 유출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지나친 화폐발행은 급속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켜 금나라 화폐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이에 불안을 느낀 금나라 국민들은 자신이 보유한 화폐의 가치가 더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남송으로 옮겨놓기 시작했다. 금나라에 비해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는 남송의 통화가 금나라에 비해 훨씬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고대판 환율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환율전쟁이란 금나라가 보여준 무력에 의한 약탈과 달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을 좇아 자발적인 환전을 통해 자국의 부를 해외로 유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나친 화폐발행 富 유출

부의 유출이 시작된 이후에도 금나라의 화폐발행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남송으로 부의 유출은 계속해서 증가하였고, 아예 거주지를 남송으로 옮기는 사람마저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인 노동력이 유출되어 생산능력마저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약해진 금나라는 결국 송나라와 몽골 연합군의 위협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들과의 전쟁에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은 무력으로 인한 공격이 아니라, 금나라 경제에 대한 자국민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몽골과의 전쟁 과정에서 금나라는 전비(戰備)마련을 위해 화폐 발행을 남발했고, 이로 인해 화폐의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하락한 것이다.

사실 남송 및 몽골 연합군과 금나라의 전쟁에서 남송의 역할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몽골이 손쉽게 금나라와의 무력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살펴보면, 남송의 화폐안정이 야기한 금나라와 남송 사이의 환율차이가 금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국을 떠나도록 하여 결국 국가경제의 기반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환율이 한 나라를 얼마나 조용하고 치명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금나라의 패망을 야기한 환율은 오늘날 보다 더 정교하게 각국의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재정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실시하는 무분별한 양적완화는 환율전쟁으로 인한 금나라의 패망이 현대에도 재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다 큰 문제는 자유무역협정, 경제통합 등으로 세계경제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서 서로 의존하고 있는 현대에는 환율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한 국가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고대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 경제체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급력이 높은 환율이 앞으로의 세계경제에 얼마나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김동영 KDI 연구원 kimdy@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환율 (Exchange rate)

환율은 자국통화와 외국통화가 교환되는 비율로서, 외국통화 1단위로부터 얻게 되는 국내통화의 단위를 나타내는 수치를 의미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국내통화 기준에서 본 외국통화의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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