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정기상여금 포함시킨 대법원 판결 따르면 돼
안철수 신당은 민주개혁 진영 심각한 분열 초래할 것 "
전병헌 의원(서울 동작갑·56)이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은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지난달 15일 원내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2등을 한 그는 결선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하며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 뽑혔다. 전 원내대표는 “1차 투표 결과가 발표됐을 때 심장이 다섯근이었다. 두근반 두근반씩 뛰었기 때문인데 그때 민주당 의원님들의 뜻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원내대표가 된 뒤 국회 본청 민주당 원내대표실은 두 가지가 변했다. 하나는 민주당 배경 판에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새겨 넣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벽에 걸려 있던 수묵화를 색채가 화려한 ‘들꽃(유영희 작)’으로 교체한 것이다. 그는 “너무 정적인 그림이라 국회 사무처에 반납하고 대신 역동적인 색깔들로 들꽃을 하나하나 색칠한 그림을 받아왔다”며 “민주당의 들꽃 정신과 살아있는 기백을 갖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9일 그 방에서 전 원내대표를 만났다.
▷첫 원내대표직입니다. 해보니 어떻습니까.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투상황인데 재미있고 또 어렵습니다. 지역구는 사실상 아내가 전담하고 있고 매일 회의의 연속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남북 문제를 국회에서 챙겨야 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자마자 기절하고 있습니다. (웃음)”
▷경제민주화가 이슈입니다. 6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처리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봅니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서 9월 국회로 미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국회의 의지 부족이나 여야 합의가 안 돼서 뒤로 미뤄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께서도 6월 임시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진전된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반드시 6월 개원 협상 당시 합의를 지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갑을(甲乙) 문제는 대선 때 없다가 갑자기 나온 이슈란 느낌이 듭니다.
“갑을 문제는 남양유업 사태로 불거진 것은 맞지만 이 문제는 오랫동안 쌓여온 사회적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바로잡아 갑과 을을 모두 건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민주당이 이슈를 만드는 것보다 이슈에 편승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갑을 문제는 편승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슈에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슈 편승이라고 비판을 받더라도 국민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급한 문제예요. 제1야당으로서 당연히 이를 바로잡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조가 계속됩니까.
“갑을 문제는 시대정신이라고 봅니다. 제가 원내대표를 하면서 민주당은 시대정신을 담는 쪽으로 가겠다고 결정했고 시대정신을 두 가지로 잡았어요. 첫 번째는 사람다운 생활이 가능한 노동과 임금 문제고, 두 번째는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입니다. 제대로 된 노동과 임금구조를 만들고,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법률적, 구조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민주당이 노력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그런 기조와 방향이 경선에서 말씀하신 민주당의 혁신과 맞닿아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혁신은 하드웨어적인 문제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당 슬림화, 민주정책연구원의 위상 강화, 인원 충원 등이 하드웨어적인 혁신이라면 민주당을 왜 지지해야 하는지, 어떤 정책으로 국민에게 접근하고 다가가야 하는지는 소프트웨어적인 혁신이에요.”
▷6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법 우선순위를 3개만 꼽자면.
“남양유업 방지법이 1순위라고 봐요. 두 번째는 일감몰아주기 방지법, 세 번째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방지법입니다.”
▷통상임금에 대한 논의도 뜨겁습니다.
“통상임금 문제는 간단합니다. 새로운 논의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대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따르면 되는 거예요. 이 문제는 20년 동안 법률적으로 완결된 문제라고 봐요. 그 판례들을 다 무시하고 새로운 성문법을 만들자는 것은 기존 대법원의 판례보다 더 좁혀서 해석하자는 건데 이는 논리적 모순입니다.”
▷대법원의 판례를 따르면 기업 부담이 늘고, 외국 기업의 투자가 줄어든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기업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임금구조가 기본급이 총 임금의 40% 수준인데 이는 G20 국가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칩니다. 왜곡된 임금구조에 안주해서 경영해온 책임은 기업에 있는 것이지 노동자나 일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을 설득해야 하는 면이 있어요. 기업이 손해보는 게 아니라 임금이 늘면 가처분 소득이 늘고 가처분 소득이 늘면 구매력이 확장됩니다. 시장이 선순환하는 거죠.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저성장 양극화 시대를 헤쳐나갈 넓은 안목으로 바라볼 때가 됐습니다.”
▷민주당의 ‘99%를 위한 정당’ ‘을을 위한 정당’이 편을 나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99%를 위한 정당이라는 슬로건에 저는 동의하지 않았어요. 제가 전략 책임자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을을 위한 정당은 좀 다른 개념이에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것이지 서로 편가르기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을을 지키는 게 갑을 망하게 하는 건 아닙니다. 갑이 있어야 을도 있습니다. 다만 을을 지켜야 갑도 건강해지고, 사회가 건강해져야 갑과 을이 같이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박근혜정부가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하나씩 꼽아주십시오.
“저는 잘한 걸 칭찬해주고 싶은데 솔직히 뭘 잘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남북 관계가 잘한 일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남북대화가 다시 시작됐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았을 뿐이지 대치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거든요. 못한 건 만사(萬事)라고 하겠습니다. 인사가 만사니까요.”
▷만약 여당 원내대표였다면 어떤 일을 했겠습니까.
“인사 스크린을 객관적으로 했을 것입니다. 대통령께 건의도 많이 하고 청와대가 하는 인사를 공유하고 이를 검증했을 것입니다. 지금 여당은 청와대 인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누가 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윤창중 사태가 난 것이고요.”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몇 번 만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환담이 있었는데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민주당이 지향하는 정책과 비전이 안 의원과 비슷하니 국회 밖에서는 경쟁 관계가 될지 모르지만 안에선 충분히 협력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그러면서 두 가지를 꺼냈는데 진주의료원을 포함한 공공의료 국정조사특위에 안 의원의 참여를 요청했고 을지키기 관련 법안에도 함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어요. 안 의원도 공감하고 함께 하는 걸 검토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안철수 신당’ 창당 여부가 관심입니다.
“안 의원이 신당을 만든다면 민주 개혁 진영에 매우 심각한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안 의원이 기계적 단일화는 앞으로 안 하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기계적인 분열이 우려되는 상황이에요.”
▷민주당이 상징 색깔로 예전 한나라당의 색깔인 파란색을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미국도 보수당인 공화당이 빨간색을, 진보정당인 민주당이 파란색을 쓰고 있어요. 새누리당이 빨간색을 쓰는데 민주당이 평화의 상징인 파란색을 못 쓸 이유는 없습니다. 태극기에도 빨강, 파랑이 있고요. 다 바꾼다는 마음이니 못할 건 없습니다.”
김재후/이호기 기자 hu@hankyung.com
■ 전병헌 원내대표 누구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내 대표적 전략·기획통으로 꼽힌다. 1998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화민주당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국정홍보비서관, 국정상황실장 등을 지냈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서울 동작갑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뒤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당 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맡는 등 전략·홍보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18대 국회에서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 시절 정책위 의장을 맡아 활약했다. 당시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이른바 ‘3+1 무상복지’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이슈 메이커로서의 면모를 발휘했다.
원내대표 경선 기간에는 “집권 초인 박근혜정부와 여당 원내대표에 맞서려면 협상을 압도하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강한 원내대표, 선명한 야당론’을 내세워 동료 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충남 홍성 출신(1958년생)으로 서울 휘문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부인 조영아 씨(49)와 1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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