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협력관계 구축" 합의
오존층 파괴물질 감축
국제질서 재편 '첫 작품'
미국 캘리포니아 란초미라지의 고급리조트 서니랜즈에서 지난 7~8일(현지시간)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노타이·셔츠 차림으로 이틀간 네 차례에 걸쳐 여덟 시간 가까이를 함께했다. 7일 만찬은 밤 10시44분에 끝났고, 이튿날 오전에는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통역만 데리고 50분간 산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산책 도중 기자들에게 “환상적이다(terrific)”고 했다.
톰 도닐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번 만남의 주된 목적은 친분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독특한 회담형식의 배경을 설명했다. 회담에 참석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건설적이며 전략적이고 역사적인 만남이었다”고 자평했다. 회담 결과는 그러나 친분 쌓기 이상이었다.
두 정상은 기자회견에서 “미·중 간의 새로운 협력관계 모델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시 주석은 ‘대국(大國) 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역설했다. 그는 “중·미 관계는 새로운 역사적 지점에 서 있다. 이번 만남의 주요한 목적은 중·미 관계 발전의 청사진을, 그리고 태평양을 초월한 협력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의 ‘신형 대국관계’를 수용한 모양새였다. 그는 “미국은 중국이 지속적이고 평화적으로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중국이 경제·군사력 측면에서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만큼 앞으로 주요 2개국(G2)이 신 국제질서를 만들어 가자는 데 두 정상의 암묵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두 정상은 회담 뒤 오존층을 파괴하는 ‘수소불화탄소(HFC·냉장고 냉매 등에 사용)’의 생산·소비 감축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동안 기후변화 대처 이슈에서 신흥국을 대변해온 중국이 미국 주장을 전격 수용한 것이다. G2가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낸 첫 작품이란 평가다. 일본 러시아 영국 등 세계 각국 지도자가 G2의 파격 정상회담을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두 정상은 그러나 사이버해킹, 위안화 평가절하, 양국 간 투자규제 완화 등에서는 신경전을 벌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사이버해킹 사례를 들어가며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훔쳐가는 해킹이 지속되면 양국 경제관계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시 주석은 “사이버해킹 문제는 함께 풀어가자”면서 “우리도 피해자”라고 맞섰다. 그는 중국 기업의 잇따른 미국 기업 인수합병(M&A)이 미 당국으로부터 제동을 받는 것과 관련,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을 미·소 냉전시대의 종식을 불러온 1985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정상회담에 비유하고 있다. 40년간 지속된 긴장과 갈등의 미·중 관계가 새로운 협력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워싱턴·베이징=장진모/김태완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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