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필요한 건 '기업친화적 환경'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2000년부터 작년까지 한국 기업들의 국내 설비투자는 연평균 6.8% 늘어난 반면 해외투자는 19.9%나 증가했다. 2007년부터 작년까지 한국 기업의 연평균 해외투자금은 234억달러, 올 3월 말 현재 해외투자 신고 법인 수는 5만4628개에 이른다. 한국 기업의 ‘해외 탈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내 대기업 수는 줄어들고 있다.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은 1999년 157개였으나 2009년에는 111개로 줄었다. 반면 종업원 300명 미만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4만5706개에서 5만4815개로 늘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기업도 커져야 하는데 거꾸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좋은 일자리는 자꾸만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4대 그룹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임직원 94만1000명 중 40.2%인 37만8000명이 해외 종업원이라고 한다. 해외 종업원은 2010년 30% 선에서 지난해 40%를 넘어섰다. 주력산업은 더욱 심하다. 현대·기아자동차는 해외생산 비중이 작년에 51%로 절반을 넘어선 데 이어 금년 중 55%까지 커지고, 삼성전자의 해외 고용인력은 지난해 11만9800명으로 국내 고용인력 10만2000명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해외 탈출이 가속화되고, 좋은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원인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증세, 규제 증가, 과도한 하도급법, 엔저 지속, 높은 생산비용, 경직된 노사관계, 반(反)기업 정서로 분석하고 있다. 국내 기업 생산직 임금은 중국 현지 기업의 10배인데 생산성은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고, 2008년에 5186건이던 등록규제 건수는 지난 5월 말 현재 1만4796건으로 급증한 터이다. 설상가상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강도 높은 새로운 규제들이 경쟁적으로 입안되고 있다. 2%대의 저성장과 악화일로의 고용불안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정부는 고용률 70% 로드맵을 통해 시간제 일자리 93만개와 창업을 통한 일자리 163만개를 만들겠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장시간 근로와 육아를 겸해야 하는 여성들, 퇴직 장년층을 생각하면 당연히 반듯한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 속에서 성장률을 단기간에 회복하기 힘든 한국 경제의 여건을 고려하면 시간제 일자리를 통한 고용률 제고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
문제는 어떻게 반듯한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17년까지 93만개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 목표를 달성하려면 당장 내년부터 연평균 23만개씩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연간 창출 일자리가 30여만개인 점을 고려하면 만만한 숫자가 아니다. 결국 기존 취업자들의 일자리는 물론 소득도 나눠야 한다는 것인데 노조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임금 감소 없이 기업 부담만 커지게 되면 기업의 해외 탈출은 더욱 가속화돼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 직무도 정규직 직무를 나누지 못할 경우 질 낮은 비정규직만 양산할 수도 있다.
창조서비스 분야의 창업을 통한 일자리 163만개 창출도 쉬운 일이 아니다. 보건 및 사회복지 분야는 상당 부분 정부 예산이 소요되는 준공공 성격을 띠거나, 1차 소득이 있어야 수요가 창출되는 2차 서비스업이고, 공공행정 국방은 한 번 늘리면 계속 국민 세금을 투입해야 해 재정팽창 등 많은 문제점이 수반될 수 있다. 순수 창조경제 창업을 통한 일자리 71만개 창출 목표 달성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이미 과당경쟁 상태에서 부실 자영업자만 쏟아낼 것이란 우려가 없지 않다.
좋은 일자리는 해외로 내보내고 시간제와 서비스분야 창업에 진력하고 있는 양상이다. 획기적인 규제완화로 기업투자를 촉진하고 금융 교육 의료 관광 등 지식집약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도, 벤처 창업도 다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자원이 없는 작은 나라이면서도 1인당 소득이 5만~6만달러나 되는 네덜란드, 스위스 등은 한결같이 금융 교육 의료 등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을 갖고 있는 나라다. 110만명에 달하는 청년실업자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숙고해야 할 때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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