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걱정되는 '직장 어린이집 대책'

입력 2013-06-12 17:27   수정 2013-06-13 05:14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보육 수요가 많건 적건 무조건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하니 고민입니다. 미(未)설치 기업은 명단을 공개한다는데, 자칫 ‘나쁜 기업’으로 찍힐까봐 걱정스럽기도 하고요.”(A기업 관계자)

정부가 지난 1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직장어린이집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뒤 고민에 빠진 기업이 적지 않다. 대책의 핵심은 현재 39%인 기업의 어린이집 설치율을 2017년까지 70% 이상으로 높인다는 것이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또는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인 기업은 직장어린이집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보육 수당을 지급하거나 외부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맺는 형태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부터 보육수당을 폐지하고, 외부 위탁계약도 2017년에 폐지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보육 수요에 관계없이 기업들은 직장어린이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신 직장어린이집 설치 기업에 대한 지원금을 2억원에서 3억원으로 늘려주기로 했다.

대기업들은 이미 상당 수준의 보육시설을 갖췄으므로, 정부가 염두에 둔 대상은 중소기업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1억원을 더 지원한다고 해서 중소기업들이 어린이집을 선뜻 세우기는 힘들 것이란 지적이 많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1일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힘들다”고 논평한 이유다.

정부가 직장어린이집 부담을 기업에만 떠넘긴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고용보험기금 중 ‘고용안정 및 직업능력개발 계정’에서 설치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 돈은 정부 예산이 아니라 기업들이 부담하는 돈이다. ‘돈은 기업이 내고, 생색은 정부가 낸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관계부처 홈페이지에 미설치 기업 명단을 1년간 공개해 ‘망신’을 주겠다고 밝혔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고위 관계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면 직장어린이집 설치에 앞장설 것”이라고 압박했다.

여성 고용률을 높이고 육아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 방침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 채 ‘직장어린이집을 만들지 않으면 나쁜 기업’이라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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