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이사회와는 별도로 실제 회사 업무를 담당하는 집행임원 선임을 의무화하려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가 “기업 지배구조를 국가가 강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재계는 감사위원 선임 때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방안에 대해서도 주주권 침해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14일 법무부 주최로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지배구조 상법 개정 공청회’에서 “집행임원 제도 도입 여부는 주주와 기업의 선택 사항이어야지, 국가가 특정 형태를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재계는 오너 일가 등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비등기 임원을 집행임원으로 지정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 본부장은 또 “등기이사와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하라는 것은 최대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제한하고 주주권과 재산권을 침해해 헌법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146곳에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와 분리 선출토록 했다. 이 경우 지배주주 의결권이 지분 3%까지만 적용돼 지배주주의 의사가 제한받을 수 있다.
배 본부장은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는 “1주당 1의결권 원칙에 어긋나 주주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며 “국내 기업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늘어난 상황에서 외국계 헤지펀드가 집중투표제를 이용해 경영권 간섭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자산 2조원 이상은 지분율 1% 이상·그 외 3% 이상)에게 1주당 선임 이사 숫자와 동일한 복수의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예컨대 이사 3명을 뽑을 때 10주를 가진 주주는 의결권 30개를 갖게 된다. 소수주주가 표를 특정인에게 ‘몰아주면’ 소수주주가 원하는 인물을 이사로 올릴 수 있다.
개정안은 상장사의 경우 집중투표제를 정관에서 배제하지 못하도록 해 간접적으로 강제하기로 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업 자율에 맡기면 기업 내 특정인에게는 유리하지만 막상 기업에는 불리한 방향으로 결정될 우려가 있다”며 재계의 의견에 반론을 폈다. 김 교수는 “감사위원 선출에서 지배주주 영향력만 제한하면 2대주주에게 힘을 실어주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다른 주주들의 영향력도 지배주주와 동일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정경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사위원 선임 관련 개정안의 목적은 최대주주의 선임권을 제한하려는 게 아니다”며 “최대주주의 의사를 반영해 이사를 선임하는데, 이사를 감독하는 감사위원까지 최대주주가 선임하는 것은 문제라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집중투표제가 외국 헤지펀드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도입하지 않는다면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집중투표제는 주주의 실질적 평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주주 1만명 이상 상장사부터 우선적으로 전자투표 실시를 의무화하는 안도 포함됐다.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특정일에 몰려 있어 소액주주의 참여가 제한된다는 문제점을 줄이려는 취지다. 이승렬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조사본부장은 “주주총회 쏠림 현상은 현행 자본시장법에서 상장사들이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 사업보고서를 제출토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업보고서를 주총 개최 여부와 상관없이 제출토록 하는 등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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