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웰에이징’(잘 늙는 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한다. 그룹 내 최고 두뇌들이 모인 삼성종합기술원에 전담 연구조직을 세우고, 노화과학 권위자인 박상철 전 서울대의대 교수(사진)를 영입했다.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의 일환으로 세포 노화, 노인성 질환 대체의학 등 노화기술 연구개발(R&D)을 시작한 것이다.
16일 삼성에 따르면 삼성종합기술원은 올 1월 웰에이징연구센터를 세우고 연구인력 확충에 나섰다. 최근 채용홈페이지(samsungcareers.com)에 공고를 내고 세포 노화, 노인성 질환, 오믹스(Omics), 한의학, 대체의학 등을 연구할 R&D 인력을 뽑고 있다. 오믹스는 특정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생리현상과 관련된 정보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생명현상을 밝히는 학문으로 바이오과학의 기초다.
삼성 관계자는 “종기원은 중장기 핵심·기초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그룹의 최상위 연구 조직”이라며 “종기원에 웰에이징 연구를 맡긴 것은 이 기술 개발에 그룹의 핵심 역량을 쏟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부사장급인 센터장은 노화 연구의 권위자인 박상철 전 서울대의대 교수가 맡았다. 한국노화학회장(1998~1999), 국제노화학회장(2000~2001),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장 등을 지내고 가천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장으로 일하던 박 센터장은 올 1월 자리를 옮겼다.
삼성이 노화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세계적인 고령화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미래산업을 바꿀 7대 파괴적 혁신기술’ 보고서에서 혁신기술의 하나로 유전자 치료제(gene therapy)를 꼽았다. 유전자 치료제는 손상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해 질병을 완치하는 신개념 치료제를 말한다. 노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젊은 유전자’로 바꾸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으며 피부색과 관련된 유전자를 교체하면 피부색도 하얗게 바꿀 수 있다.
이 연구소가 분석한 바이오·헬스케어 시장은 2012년 기준 3000억달러(약 320조원)에 달한다. 성장성도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데다 적극적 소비를 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젊음을 되찾으려는 데 지출을 늘리고 있어서다.
삼성이 바이오·헬스케어 투자를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삼성은 당시 신수종 사업의 하나로 바이오·헬스케어를 꼽고 2020년까지 2조1000억원을 투자, 연매출 1조8000억원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그동안 삼성바이오로직스(2011년) 삼성바이오에피스(2012년) 등을 설립해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생산 준비를 해왔다. 또 삼성전자는 메디슨 및 레이 인수(2010년), 미국 뉴로로지카 인수 등을 통해 의료기기사업을 확대했다. 앞으로는 바이오 투자가 복제약, 의료기기와 함께 웰에이징 기술 등 세 개로 나뉘어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웰에이징 등 바이오·헬스케어에 관심을 두는 기업은 삼성만이 아니다. GE(미국)와 존슨앤드존슨, 지멘스(독일), 필립스(네덜란드) 등 기존 강자 외에도 파나소닉, 소니, 포드 등이 뛰어들고 있다. 소니는 미국 의료기기업체 마이크로닉스를 인수했고, 포드는 당뇨병 환자의 혈당수치를 점검해 위험을 경고해주는 ‘차량모니터(In-Car Monitor)’ 시스템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LG가 LG생명과학 LG유플러스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SK바이오팜은 중국 기업과 손잡고 정신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한화도 한화케미칼을 주축으로 바이오·헬스케어를 육성하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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