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PEF 투자 이상과 현실의 괴리

입력 2013-06-19 15:31  

캐프 투자한 IMM 창업주와 소송전
기업경영 참여하라는 금융당국,현실에선 M&A꾼으로 몰려



이 기사는 06월19일(05:57)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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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와이퍼 수출 전문 기업인 캐프가 경영권 분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 5월 캐프는 주주총회를 통해 1대 주주를 창업주인 고병헌 회장에서 사모펀드인 IMM프라이빗에쿼티로 변경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고 회장측은 주총이 무효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고, 이에 맞서 IMM은 최근 고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족벌 경영 막겠다는 사모펀드
경북 상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소동’의 결론은 법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하지만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캐프 사태’를 사모펀드의 역할에 관한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캐프의 경영권 분쟁은 결국 사모펀드의 경영 참여를 놓고 창업주와 빚어진 갈등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고 회장은 1995년 캐프를 창업해 연 매출 2000억원을 올리는 강소 기업으로 일궜다. 생산 물량의 80% 가량은 미국 등 해외로 나간다. 고 회장이 IMM과 ‘인연’을 맺게 된 건 2010년 5월 전환상환우선주 등의 형태로 총 600억원을 유치하면서부터다. 2008년 키코(KIKO)사태로 발생한 외환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IMM의 투자금은 국민연금 등이 투자한 펀드에서 나왔다. IMM은 이 펀드의 운용사다. 일정 기간 펀드의 자금을 굴려 IMM은 투자자에게 적어도 8% 이상의 수익률을 돌려줘야 한다. 이 때문에 IMM은 고 회장과 계약을 맺으면서 몇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실적 개선을 포함해 600억원을 즉각 키코 청산에 사용할 것, 계열사에 대한 지급보증을 없앨 것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투자 시점부터 1년이 지난 후 이를 어길 시엔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 가격을 조정(리픽싱)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IMM측 주장에 따르면 고 회장은 약속을 모두 어겼다고 한다. 지난해 매출은 1092억원으로 전년보다 24.6% 급감했고, 순이익은 164억원 흑자에서 401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환율 조건이 좋아졌다는 이유로 키코 청산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IMM은 1대 9(우선주 : 보통주)의 조정된 전환 비율로 보통주 260만28주를 전환 청구해 보통주 85%를 확보했고, 5월14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이를 통과시켰다. IMM 관계자는 “기존 대주주의 전횡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며 “주총은 법원의 공증을 받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고 회장측은 “적대적 M&A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기업 사냥꾼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비난하고 있다. 고 회장측 관계자는 “IMM이 투자 직후부터 파생상품 강제 청산을 압박해 회사 측에 260억원의 추가 손실을 초래했다”며 “부당한 경영간섭을 자행해 회사의 경영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경영 참여하라하는데...
양측 주장의 핵심은 사모펀드의 경영 참여를 어떻게 보느냐로 갈려 있다. 이론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보면 사모펀드의 역할은 명확히 규정돼 있다. 자본시장법상 사모펀드는 경영권 참여, 사업구조 또는 지배구조의 개선 등을 위한 투자집합체로 정의돼 있고, 이를 위해 투자 대상 회상의 주식 10% 이상을 보유하거나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하여 사실상의 지배력 행사가 가능한 투자 등으로 재산 운용 방식까지 정해져 있다.

이같은 원칙이 가장 잘 반영돼 있는 게 지난 4월15일부터 시행된 사모펀드 옵션부 투자 모범규정 개정안이다. 금융감독원은 사모펀드가 콜옵션(정해진 수익률로 투자 대상 기업이 사모펀드 지분을 되사올 수 있는 권리), 풋옵션 (사모펀드가 투자 대상 기업에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 등의 계약을 맺은 다음, 특별한 경영 개선에 관한 노력도 없이 수익을 가져가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개정안을 마련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금감원은 옵션부 투자를 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도 적시했다. ▲투자를 받은 기업인이 주요 경영 사항과 관련된 계약상의 의무를 위반했거나 ▲사모펀드가 선임한 임원을 해임할 경우 ▲계약상 목표 경영지표 달성에 실패하는 경우 등이다. 이를 캐프 사례에 적용하면 IMM은 금감원의 투자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IMM이 투자한 전환상환우선주는 옵션부 투자보다 리스크가 크다. 회사가 망할 경우 원금 회수도 불가능하다.

오너 경영 위주인 한국적 기업 풍토에선 사모펀드 투자에 관한 한 금융 감독 당국이 애초 생각한대로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4년 사모펀드가 도입된 지 올해로 9년째다. 총 약정 규모도 40조원에 달한다. 기업 오너들이 경영권을 자발적으로 내놓는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에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하는 바이아웃(buy-out) 거래는 드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IMM이 겪고 있는 일들이 앞으로도 숱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캐프의 전 경영진과 IMM 모두 금융 감독 당국에 양측의 입장을 주장하는 탄원서를 냈다. 금감원이 어떤 판단을 내일 지 궁금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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