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지자체가 협동조합 뒷돈 대줘도 좋다니…

입력 2013-06-19 17:03   수정 2013-06-20 05:41

정부가 조합 정치세력화 부추기나
자주·자립·자치가 협동조합 원칙…기본법 자금지원조항 삭제돼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이런 소리가 왜 안 나오나 싶었다. 다섯 명만 모여도 협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지 6개월여다. 과열을 향해 치닫는 협동조합 설립 붐에 마침내 협동조합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한 여당 의원에 의해 제기됐다.

일반 국민은 말할 것도 없다. 협동조합법이 국회를 통과하던 2011년 말, 이 법을 제대로 알고 찬성표를 던진 의원이 얼마나 되겠나. 박원순 씨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느라 여념이 없던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언제 준비했나 싶을 정도로 느닷없이 법안을 대표 발의하더니,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대표도 법안을 냈다. 협동조합 선진국이라는 미국 일본에도 없는 법률은 그렇게 야당 주도로 한 달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협동조합법 제정을 서두른 이유는 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면 알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가 누구보다 빠르다. ‘협동조합도시 서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정의 포커스를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 사업에 두고 있는 박 시장이다. 문재인·안철수 의원이 정치 활동을 재개하면서 처음 연 토론회 주제도 모두 협동조합이었다. 차기 야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모두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경제에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권은 눈만 껌뻑거릴 뿐이다. 야당 대표가 발의한 법안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들어준 결과다. 얼마 전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가 막히다. “가카께서 협동조합법을 통과시켰는데 시민을 날줄과 씨줄로 엮고 교육하라는 것 아니냐. 가카가 아무것도 모르고 통과시켰다.” 그는 자신도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배후에는 박 시장이 있다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그렇게 결성된 협동조합이 예사로울 리 없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결사체로 기능하고 있다. 지역 내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가 손잡고 대형 마트의 출점을 저지하거나, 취급 품목을 줄이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서울 망원동을 비롯한 몇 곳에서 벌써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엔 지방자치단체장의 지원이 적극적이다. 동네 문구점은 대형마트와 중견기업의 전문점 탓에 죽겠다며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동반성장위원회에 학용문구판매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선정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런 협동조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법을 되돌리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이나 하겠나. 그렇다면 자주·자립·자치라는 협동조합의 기본 원칙만큼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협동조합에 뒷돈을 대 정치 조직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법 10조2항이 문제다. 국가·공공단체는 협동조합 및 사회적 협동조합의 사업에 필요한 자금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이다. 이 조항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서울시다. 박 시장은 이미 민관 매칭 방식으로 1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대기업 등 민간에서 500억원을 걷고 서울시가 500억원을 보태 협동조합에 뿌리겠다는 것이다. ‘모금의 달인’이 나섰다. 보통 일이 아니다.

정부는 때마침 협동조합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공공단체’에 지자체가 포함되는지 여부에 논란이 있을 수 있으니 ‘국가 및 공공단체’라는 표현을 ‘국가·지자체 및 공공단체’로 분리하겠다는 것이 하이라이트다. 지자체가 협동조합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서 지자체가 협동조합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개정안을 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내년은 지자체 선거의 해다. 협동조합은 무엇보다 지역밀착형 조직이다. 정치성을 띤 협동조합이 지자체 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협동조합은 수평적·수직적으로 연계되면 무한대의 확장이 가능하다. 박 시장 말마따나 차기 서울시장 임기가 끝나는 2019년까지 서울에서만 8000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져 연계성을 갖는다면 차기 대선에도 막강한 폭발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얘기다.

협동조합이 원칙을 잊으면 무서운 정치조직이 된다. 더욱이 경제에 ‘1인1표주의’가 득세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국가와 지자체가 협동조합에 뒷돈을 될 수 있도록 한 조항만큼은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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