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타고 전장을 누비는 꿈 "…전세계 남자들을 반하게 하다

입력 2013-06-20 15:30  

Best Practice - 워게이밍

'유럽의 변방' 벨로루시서 창업한 게임회사…'월드 오브 탱크'로 대박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라
2차대전 전장 벨로루시에서 어릴때 부터 전차 보며 성장
MMOG인기에도 한눈 안 팔고 전차 게임 개발에 집중

불모지에서 찾은 기회
내수시장 작고 인프라 부족해도 낮은 법인세율 등 장점 살려…글로벌 게임 기업으로 성장




세계 6000만여명이 즐기는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G) 개발 기업. 2011년 271억원 수준이던 매출이 1년 만에 3284억원으로 12배 이상 급증. 미국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은 햇살이 내리쬐는 샌프란시스코 해안이 아니라 동유럽 스비슬로치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벨로루시에서 창업한 워게이밍이다.

지난해 한국에 소개된 전차 MMOG ‘월드 오브 탱크(world of tank)’의 제작사이기도 한 워게이밍은 민간 산업에 불리한 자국내 여건을 딛고 세계적 게임 개발업체로 성장했다. 강점이 있으면서 잘 아는 분야의 게임을 한눈 팔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남자의 로망’ 공략한 변방의 게임개발사

1994년 이래 알렉산데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면서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가’로 불리는 벨로루시는 사업이 쉽지 않은 나라다. 국가와 공공기업이 전체 경제의 75%를 장악하고 있어 경제 전반이 경직돼 있다. 면적 20만7600㎢(남한의 두 배)에 인구는 962만명에 불과해 내수시장도 작다. 이웃 국가인 러시아와 폴란드 역시 IT산업 인프라가 낙후돼 있어 딱히 벤치마킹할 만한 회사도 없다. 게임 개발사를 차리기에는 최악의 여건이다.

하지만 빅토르 키슬리를 비롯한 4명의 창업자는 전차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만큼은 다른 이들보다 자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벨로루시는 소련군과 독일군이 격돌한 주요 전장(戰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갖가지 무용담을 듣고 자랐고, 들판에 버려진 전차 위에서 뛰어놀았다.

이 때문에 미국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가 요정과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world of war craft)’로 세계 MMOG 시장을 제패하고 있을 때도 관련 분야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전쟁 MMOG 분야에서는 갖가지 총싸움 게임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전차를 타고 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누비며 전차포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남자들의 ‘로망’에 집중했다.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장을 배경으로 260종 이상의 전차가 각축을 벌이는 ‘월드 오브 탱크’를 탄생시킨 배경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월드 오브 탱크’를 출시하며 ‘남자의 게임’으로 광고 문안을 작성하는 등 게임 개발에서 마케팅까지 철저히 남성에 집중했다. 이는 ‘월드 오브 탱크’ 이용자의 98%에 이르는 남성들의 높은 충성도로 이어졌다.

○불리한 환경을 강점으로

‘월드 오브 탱크’의 성공으로 워게이밍 직원은 2010년 120명에서 최근 1600명으로 늘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도 지점을 내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게임 개발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키슬리가 22세이던 1998년 창업한 워게이밍은 이미 15년의 업력을 갖췄다. 어린 시절 옛 소련의 ‘체스 엘리트’로 양육됐던 키슬리는 컴퓨터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는 것을 보고 컴퓨터 게임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체스 학습 시절 터득한 전략에 대한 이해는 전쟁 게임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동유럽 변방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키슬리는 “미국 등 선진국 업체들이 기존에 나온 게임 장르는 장악하고 있는 만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틈새 중에 틈새를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청동기시대부터 중세시대까지 역사에 등장한 1300여명의 전사를 세부 형태까지 그대로 묘사해 서로 싸우도록 한 ‘아이런 에이지’가 대표적인 예다.

이 게임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매달 수천달러에 불과했지만 워게이밍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벨로루시의 경제가 낙후된 만큼 기업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었기 때문이다.

벨로루시의 법인세율은 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5.4%)의 절반에 불과하다. 특별경제구역에 자리잡은 워게이밍은 이보다 낮은 9%를 세금으로 낸다. 컴퓨터 엔지니어의 공급은 많지만 기업은 적어 초기에는 월 25달러에도 직원을 고용할 수 있었다. 벨로루시는 민간기업의 불모지지만 장점도 있었던 것이다.

○회사 성장 위해 경영과 개발 분리

워게이밍의 경영자들은 10년 넘게 회사를 꾸리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게임은 철저히 개발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키슬리는 “게임 개발은 개발자들이 훨씬 잘할 수 있다고 믿고 경영자는 전반적인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많은 게임회사 경영자들은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도 게임 개발에 참여하며 사업을 소홀히 해 실패한다”고 말했다.

게임 유료화 모델의 ‘적정선’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게임 아이템 판매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면 이용자들의 게임에 대한 흥미는 떨어진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돈을 주고 탱크나 무기를 구입할 수는 있지만 노력으로 레벨을 올려 획득한 무기보다 성능은 떨어지도록 설계했다.

키슬리는 “게임 개발자에게 가장 좋은 경영전문대학원(MBA)은 게임”이라고 말한다. ‘문명’ 등 전략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회사 경영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을 배웠다는 설명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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