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CEO 자리 지킨 비결…"경영의 기본과 순서 지켜라"
끊임없는 공부·자기 계발로 자신의 인적 자원 극대화해야
정보 독점하는 직원이 최악…회사내 공유 시스템 만들어야
경제 잘하기 위해 '창조' 필요…창조 자체를 목표 삼으면 안돼
“삼성에서 2000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11년 동안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별 탈 없이 최고경영자(CEO)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말씀드릴 두 가지를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기본에 충실하자’이고, 두 번째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입니다. 저는 이 말을 경영에 순서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연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봄학기 열세 번째 시간. 최도석 전 삼성카드 부회장은 “기본에 충실한 것은 회사 내에서 생색도 잘 안나고 성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최 전 부회장은 1975년 제일모직에 입사, 삼성전자 사장을 거쳐 2010년 삼성카드 부회장으로 은퇴했다. 삼성전자에선 2000년 1월 대표이사에 올라 2008년까지 9년간 사장자리를 유지하며 ‘관리의 삼성’을 일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기 계발로 전문성 높여라”
최 전 부회장이 강의실 앞 화면에 ‘기업의 기본:경영’이라는 제목의 프레젠테이션(PT) 자료를 띄웠다. ‘경영은 기업의 모든 자원(인적, 물적, 정보)을 이용해 기업의 목적인 장기 이익 극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최적의 대처 방안을 Plan-Do-See(계획하고 실행하고 점검)하는 것.’
“우선 인적 자원입니다. 개인적인 차원과 회사 차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는 자기 계발을 통해 전문성을 높여야 하겠죠. 이점에서 파나소닉을 창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무엇의 신(神)’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많이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경영의 신’은 아직까지 딱 한 사람, 마쓰시타뿐입니다. 삼성도 초기엔 마쓰시타의 경영 기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마쓰시타가 나이 들어 병상에 누워 있을 때 후배 경영자들이 찾아와 성공 비결을 물었다. 마쓰시타는 ‘하늘로부터 세 개의 은혜를 받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첫 번째로 나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다. 그 결과 파나소닉을 창업했다. 두 번째로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일찍 알았다. 그래서 96세까지 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4학년에 학교를 중퇴했다. 모든 사람이 내 스승이었다.’
◆“직접 교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공부”
“1975년 삼성에 입사해서 수출 부문 몇 달, 판매 몇 달 해보고 경리과로 갔습니다. 경리과에서는 처음 몇 개월을 전표 정리만 하다가 처음으로 일반 경리 전표 작성 업무가 떨어졌습니다. 당시는 현업에서 가져오는 증빙을 경리과에서 전표를 만들어 부장의 결제를 받아야 회삿돈이 지출되던 시대였습니다. 전표를 작성해서 관리부장에게 가져갔더니 부장이 ‘전표에서 대변은 빨간 글씨를 쓰고, 차변에는 파란색을 쓰는 이유가 뭐지?’라고 물었습니다. 대답을 못해서 혼이 나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회계학 책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부기책 두 권을 사서 1주일 동안 읽었는데, 답이 안 나오는 겁니다. 결국 경리 여직원한테 답을 들었습니다. ‘색깔이 달라야 구분하기 쉽잖아요.’ 관리부장에게 다시 전표를 가져갔더니 그건 안 묻고 이번엔 적요(거래 내역)를 왜 쓰는지 물어봅니다. 또 1주일 동안 부기책을 팠습니다. 그런 식으로 수십 번 결재 서류를 퇴짜맞으며 공부한 덕에 재무의 기본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세무 분야에서 일할 때는 6개월 동안 학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부장이 됐을 때는 그룹의 부장 이상급 간부들에게 교육하는 관리회계 과정의 교재를 제 손으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선배들의 도움으로 사원, 간부시절에 업무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 차원에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라는 것이 최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 다음은 관리자로서 우수 인재를 키워본 최 전 부회장의 일화다. 관리부장 시절 회사에서 포기하다시피 한 인물이 최 전 부회장 아래 배치됐다. 세무 업무를 맡겼는데, 국세청에서 세금 추징이 들어왔다. 그 부하직원이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자 최 전 부회장은 담당 세무공무원 집을 찾아갔다. 1주일간 밤 12시까지 기다려도 만나지 못하자 새벽 5시에 찾아가서 결국 세무공무원을 만나고 추징 문제를 해결했다.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부하직원이 세무를 맡은 4년 동안 단 한 건의 추징도 없었다고 한다.
◆“정보의 공유가 기업의 소통”
“물적 자원은 투입하는 것보다 산출하는 게 많으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관리해 부가가치를 높이느냐가 관건입니다. 다음은 정보 자원입니다. 회사 차원에서 정보 자원은 빠르고, 정확하고, 미래지향적인 정보를 수집해 가공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소통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만, 말장난으로 소통하는 건 기업에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개인이 가진 정보를 어떻게 하면 공유할 수 있을까가 진정한 기업의 소통입니다.”
최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장 시절 개발팀장 구매팀장 마케팅팀장 등 100여명을 모아놓고 ‘부품 표준화·공용화에 직(職)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세탁기 모델마다 다른 고무 호스를 쓰고, 리모컨 종류도 수백 가지가 넘어 애프터서비스(AS) 센터마다 부품을 수 가마니씩 쌓아놓던 상황이었다.
“같은 기능을 하는 수백 종류의 부품을 개발 부서 앞에 쌓아뒀습니다. 직접 보라는 거죠. 이런 게 정보의 공유입니다. 회사에서 최악의 직원은 정보를 독점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입니다. 일을 하기 위해선 정보가 공유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회사는 정보 공유 시스템을 만들고, 반드시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창조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
“기업의 목적은 장기 이익의 극대화입니다. 쉽게 말하면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는 이익이 계속 나와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환경 변화에 잘 대처해야 합니다.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전 세계 소비자는 언제 어디서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거죠.”
‘창조 경제’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고객이 1등 제품만 찾는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것이라고 최 부회장은 설명했다. 창조자는 1등, 추격자는 2등이기 때문이다.
“창조는 수단이고, 경제는 목표입니다. 경제를 잘 하기 위해서 창조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창조해야 1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창조 자체를 목표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국내 시장을 다지고 해외로 진출하라”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1100년대 중국의 성리학자인 주자(朱子)가 《대학(大學)》에 쓴 말이다. 보통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해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수신과 제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본에 충실해서 기업 체질을 강화하라는 뜻입니다. 개인은 실력을 닦아야 하고 경영자는 우수한 인재를 뽑아서 그에 걸맞은 일을 시켜야 합니다. 치국은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을 의미하고, 평천하는 국제화를 통해 일등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90년대 한 해의 3분의 2를 외국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평천하죠. 당시로는 틀림없는 방향입니다. 그러나 국제화는 경영의 하나의 수단인데 목적으로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모든 경영시스템을 갖추고 난 후의 국내시장, 해외시장을 제패해야 합니다. 대우는 치국도 하기 전에 평천하에 나선 것이죠.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5년부터 3년 동안 해외 법인 32개를 설립했습니다. AST라는 미국의 컴퓨터회사를 인수했더니 40개의 글로벌 법인이 따라왔습니다. 3년간 72개 해외 법인이 생긴 겁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니 기업이 휘청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최 전 부회장 등이 나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인원 3분의 1을 회사매각 또는 자회사 전출 등으로 감축하고, 여름 휴양지도 모두 없앴다. 당시 최 부회장은 ‘3분의 1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3분의 2를 살리는 것’이라고 회사 임직원을 설득했다고 한다.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삼성전자는 2004년 영업이익 11조7000억원을 달성했다. 당시 세계에서 10조원 이상 이익을 낸 기업은 10개였지만, 대부분 다국적 석유회사나 금융회사였다. 제조업체는 삼성전자와 도요타자동차밖에 없었다.
◆“부하 직원을 잘 되게 하는 것이 상사의 의무”
최 전 부회장은 제가, 즉 기업 체질 강화를 위한 4대 금기로 ‘여자, 주식, 도박, 골프’를 꼽았다.
“감사 업무를 살펴보니 부정이 일어나는 원인의 95%가 이 네 가지였습니다. 네 가지 모두 돈이 많이 듭니다. 처음에는 빚을 내다가 다음에는 하청업체 돈을 끌어다 씁니다. 결국 회사 돈에까지 손대게 됩니다. 골프는 임원이 돼서 치면 됩니다. 부장 이하는 골프 치다 걸리면 혼쭐이 났습니다. 이 네 가지 금기는 부하직원에게 끊임없이 강조해야 합니다. 임원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직원이 잘 되게 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최소한 불명예스럽게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 = 최도석 <전 삼성카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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