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甲의 횡포' 제동 걸린다

입력 2013-06-20 17:34   수정 2013-06-21 05:46

공정위, 한경 보도후 조사…골프장 이용약관 개정나서
과중한 위약금도 손볼듯



#1. A씨는 최근 라운드 도중 폭우가 내려 2번홀을 마치고 중단했다. 나오면서 계산을 하는데 9홀 요금을 내야 했다.

#2. B씨는 골프장 가는 도중에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다. 골프장에 도착한 뒤 목에 통증이 심해져 라운드를 취소했다. 그런데 골프장은 B씨에게 그린피의 절반과 제세공과금을 부과했다.

#3. 지방의 한 골프장은 예약할 때 아예 4명의 그린피를 요구한다. 2명이 오든 3명이 오든 무조건 4명 값을 내야 한다.

골퍼들에게 가중한 경기·예약 취소비용과 요금을 부과하는 ‘골프장의 갑(甲)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2002년 ‘골프장 이용 표준약관’을 내놨으나 골프장의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5월31일자로 “천재지변 등으로 라운드가 중단돼도 홀별로 그린피를 정산하는 골프장이 10곳 중 1곳에 불과하다”고 보도하자 공정위가 최근 골프장 이용요금 실태 조사와 표준약관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라운드 중단 시 홀별 정산

현행 공정위 표준약관에 따르면 ‘강설, 폭우, 안개, 기타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첫 번째 홀까지 마치지 못한 경우 이용요금 전액을 환불하고, 아홉 번째 홀까지 마치지 못하면 이용요금의 50%를 환불한다’고 돼 있다. 1번 홀을 마치는 순간 9홀 그린피가 부과된다는 얘기다.

이유태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과거에는 일단 라운드를 시작하면 일절 돌려주지 않아 이를 시정하기 위해 2002년 약관을 만들었다”며 “최근 시장 상황이 변하면서 홀별 정산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가능한지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골프장에서는 홀별로 정산하고 있다. 가산노블리제, 가평베네스트, 남촌, 뉴코리아, 아시아나, 안성베네스트 등 회원제 26곳과 스카이72, 군산, 베어크리크, 소피아그린, 골프존카운티선운 등 퍼블릭 27곳이 실시하고 있으나 그 비율은 회원제 227곳의 11.9%, 퍼블릭 89곳의 30.3%에 불과하다.

○유명무실한 표준약관

표준약관은 비회원 이용자가 주말이나 공휴일은 4일 전, 평일은 3일 전까지 취소하면 예약금 전액을 환불토록 했고 2일 전부터는 예약금 중 50%를 환불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골프장들은 입장료의 10% 범위까지 받도록 한 예약금을 대부분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예약된 날짜에 임박해 취소할 경우 과중한 위약금을 물리고 있다. 남서울CC는 주말 예약을 전날 취소할 경우 3인 그린피 요금을 위약금으로 부과한다. 회원 우대 요금 기준으로 63만원을 내야 한다. 뉴코리아CC는 2명의 그린피(비회원 요금 기준 38만원)를 지불해야 한다. 리베라CC는 2일 전엔 20만원, 전날이나 당일 취소는 30만원을 받고 있다.

○불합리한 환불규정

약관은 골프장에 도착한 뒤 라운드 시작 전 취소한 경우 이용요금의 50%를 환불토록 규정하고 있다. 개인 사정이 어떻든 라운드를 못하면 무조건 절반의 그린피와 제세공과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인혁 한국골프소비자모임 사무국장은 “사람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입장료의 절반을 지불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라운드 전 불가피한 개인 사정으로 취소한 경우 입장료 전액을 환불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골프소비자모임은 공정위 약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정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캐디피·카트비 처리는 어떻게
캐디피와 카트비 정산 문제도 개정 약관에 포함될지 관심사다. 캐디피와 카트비는 일단 라운드를 시작하면 9홀까지 마치지 못하더라도 50%를 부담해야 하고 10번홀 티샷을 한 뒤에는 전액 정산하도록 돼 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캐디들이 5시간 정도 일하고 10만원씩 받는데, 일도 하지 않은 캐디에게 골퍼들이 캐디피를 낸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캐디피와 카트비도 경기를 마친 홀까지 홀별로 정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유태 공정위 과장은 “약관은 소비자 단체, 사업자 단체, 관련부처 의견을 종합해 만들기 때문에 개정하려면 이용자들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한 좀 더 많은 근거자료가 필요하다”며 “충분한 조사를 거쳐 타당성을 검토한 뒤 불합리한 것들을 시정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골프장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골프장경영협회는 이에 대해 “공정위 의견과 앞으로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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