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11대 대통령에 성직자 출신 중도개혁파 하산 로하니(64)가 당선됐다. 보수파와 중도파가 경합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압승을 거둔 로하니 당선인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당선이 확정된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지혜와 성숙함이 승리한 결과”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란 정치권은 일제히 환영 논평을 냈다.
#이란 국민들, 변화를 원하다
로하니의 당선은 변화를 추구한 이란 국민의 갈망이 빚어낸 결과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72.71%. 국제사회의 금융제재와 30%가 넘는 물가상승률, 높은 실업률 등 지난 8년간 강경 노선을 택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밑에서 이란 경제가 붕괴 직전으로 치달은 것의 반작용이라는 해석이다. 선거일을 사흘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중도파와 개혁파의 후보 단일화도 당선에 힘을 보탰다.
‘저항 경제’를 고수해온 현 대통령과 달리 로하니는 ‘외교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고국방위원회 위원, 대통령 국가안보자문,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 핵협상 수석대표 등을 맡았다. 평화적 핵개발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유연한 협상 자세를 강조해온 인물이다. 2005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게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핵개발을 하자’고 맞서 핵협상 수석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중도파 저항 인사로 입지를 굳혔다. 사데크 지바칼람 테헤란대 정치학과 교수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로하니가 핵협상 수석대표일 때 이란은 핵개발을 하면서도 서구 제재를 피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로하니는 핵개발로 관계가 꼬인 미국과의 관계 복원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로하니는 “더 이상의 긴장관계는 원하지 않는다”며 “미래를 위해 보다 발전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재와 협박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해결책은 대화와 타협, 그리고 신뢰를 쌓을 때에만 비로소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하니는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 등 소위 ‘P5+1’과 새로운 협상안을 도출해 내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란과 P5+1의 협상은 지난해 4월 이스탄불 협상을 시작으로 지난 4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됐으나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핵은 포기 안 한다"
하지만 로하니는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을 검토하지 않겠다”며 핵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로하니의 온건 성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핵 문제, 시리아 내전 등과 관련한 이란의 대외정책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권력 구도상 외교 국방 핵개발 종교 등 주요 현안의 최고 결정권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행사하기 때문이다. 하메네이는 최근 “새 대통령이 서방에 굴복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란과 적대적 관계인 이스라엘도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란의 핵 정책에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이란의 대선 결과는 이란 정부에 국민의 불만이 만연해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면서도 “불행히도 대선 결과가 이란의 핵 야망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측 관계자도 “핵개발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에너지 자원과 의료용 목적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해 핵개발을 포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실질 영향력 발휘할지 미지수"
경제와 국정 현안을 책임질 국가 2인자로서 로하니가 대외 정책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고국가안보위원회에서 하메네이의 대리인을 역임했을 정도로 현 최고지도자가 신임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직자 출신인 그는 보수 성직자, 군부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 셈난주 소르케에서 태어난 로하니는 10대 때 신학원에서 수학하며 팔레비 왕조의 ‘샤(국왕)’에 반대하는 ‘반(反)샤’ 인물로 성장했다. 1972년 테헤란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전국을 돌아다니며 반샤 연설을 했고,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주목을 받았다. 체포 위협을 피해 프랑스로 도피한 로하니는 파리에서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와 합류, 훗날 혁명의 주도 세력이 됐다. 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로하니는 오는 8월1일 최고지도자의 대통령 승인식을 거쳐 같은 달 3일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한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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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는 국내기업들… "이란 제재 아직은…"
한국 기업들은 이란 대선 결과를 반기고 있다. 하산 로하니 신임 이란 대통령이 취임하면 최소한 대미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그러나 미국이 이란 제재를 풀지 않는 한 당장 이란 대선 효과를 보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란과 교역량이 많은 국내 기업들은 미국이 이란에 내린 경제 제재를 완화해주길 원해왔지만 상황은 더 꼬여갔다. 미국은 다음달부터 이란 무역 제한 범위를 확대한다.
기존에는 이란 석유자원 개발과 정유제품 생산을 지원하는 거래 행위만 금지했으나 7월부터는 전방위적으로 제재한다. 철강을 비롯한 원료·반제품 금속, 자동차 생산·조립 관련 거래 등도 금액을 불문하고 제재한다. 에너지·조선·해운·항만과 관련된 거래도 제재 범위에 포함된다.
이렇게 되면 국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많은 피해를 보게 된다. 대기업은 이란 대신 다른 국가로 수출을 돌릴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판로를 전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이란 수출액(62억6000만달러) 중 30억4400만달러가 중소기업 몫이었다. 특히 수출량이 많은 철강(14억7000만달러)과 자동차 부품(2억달러) 관련 중소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대기업들도 미국의 이란 제재를 부담스러워한다. 국제 해운선사들이 다음달부터 이란행 물품 운송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면 인근 두바이항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다. 두바이에서 물건을 내려 현지 배송 서비스로 이란에 물건을 실어 보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예전보다 컨테이너당 300달러 이상의 추가 운송비가 든다.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장기적으로 경제 제재 수위가 낮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KOTRA 관계자는 “이란이 한국 기업 대신 미국의 경제 제재에 보조를 맞추지 않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 기업과 거래를 늘려왔다”며 “미국과 이란 관계가 개선되면 다시 한국과 이란의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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