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미술품을 만들어 온 이유?
(1) 장식욕구
(2) 종교 교리 전달
(3) 정치적 선전욕구
세상을 떠난 이 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그는 생전에 툭하면 미술 얘기를 꺼냈다. 영국의 낭만주의자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와 그림에 심취해 제품의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언론은 툭하면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뉴욕의 경매시장에 얼굴을 내밀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게다가 당신의 바이어는 술대접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미술관, 박물관에 가자고 졸라댄다. 미술이 대체 뭐길래….
영화만 해도 변화무쌍한 스토리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금방 폐부에 와 닿는데 그 우아한 ‘화이트 큐브(전시장)’ 속 그림들은 왜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지. 대학 때 스펙 쌓느라 미술과는 담을 쌓은 게 후회막급이다. 그러나 다 선입견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미술은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문부터 열자.
미술세계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우선 ‘미술’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자. 미술 얘기는 많이 하지만 미술의 뜻은 의외로 애매모호하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미술(art)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야 하고 그 주제는 아름답거나 거룩하고 영웅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과 영웅, 아름다운 여인만이 그림 속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추하거나 하찮은 존재는 출입금지의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큰 변화가 생긴다. 추하거나 하찮은 것도 미술의 묘사대상이 된다. 사실의 재현 원칙도 깨진다. 미술 입문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이렇게 미술의 개념이 확장된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부분을 잠시 뒤로 미루고 전통적인 미술에 역점을 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문명사회를 일군 이래 끊임없이 미술품을 만들어 온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장식적인 욕구다. 처음에는 등을 붙일 곳에만 마음을 쏟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집안을 아름답게 꾸미고픈 욕구가 발동한다.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의 장식욕구는 대단해서 엄청나게 많은 미술품을 낳았다. 해외 식민지에서 들여온 진기한 물건들을 전 유럽에 배포하는 중계무역으로 번영하면서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이 두텁게 형성됐는데 이들은 집안을 꾸미고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그림을 필요로 했다.
기독교를 비롯한 고등 종교의 발전도 미술품 생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지배계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었던 고대 및 중세에는 종교적 교리를 전달하는 데 그림이나 조각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다. 예수가 인간의 선악을 심판해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는 ‘최후의 심판’은 그 대표적인 예다. 기독교도들은 이런 그림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과오를 반성했다.
정치적인 선전 욕구도 미술품을 낳는 원동력이 됐다. 정치지도자들은 언어보다는 이미지가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전달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태양신 아폴론의 화신으로 자처했던 루이14세는 베르사유의 화려한 궁전과 거대한 정원에 자신의 절대주의 정치 이념을 담았다.
그러면 미술품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정서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양손에 꼽을 수 있으리라. 경제적 가치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널뛰기를 반복한다. 반 고흐의 작품들은 생존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천문학적 가격으로 거래된다. 또 포름알데히드 액을 채운 유리상자 속에 죽은 상어를 넣은 작품을 제작하는 등 엽기적인 창작으로 유명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값은 최근 들어 뚝 떨어졌다.
반면 정서적 가치는 별다른 기복을 보이지 않는다. 중세 말 조토(1267~1337)가 예수의 죽음을 놓고 슬퍼하는 성모와 제자들을 그린 ‘비탄’은 오늘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감동을 주며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작품은 지역에 관계없이 보는 이의 마음을 밝은 양지로 끌어낸다. 그림이 갖고 있는 최대의 가치는 바로 이런 정서적 가치다. 100가지 약보다 거실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마음을 치유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대학 시절 한 은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오랫동안 책을 광적으로 수집했다고 한다. 은퇴 후 독서삼매경에 빠져 유유자적하며 노후를 보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채 50세도 안돼 노안이 오자 젊은 시절 자신의 생각이 부질없는 ‘희망사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미술이야말로 음악과 함께 우리가 생을 다하는 날까지 친구로 남아줄 든든한 존재라는 점을 일깨웠다. 그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독자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평생지기를 얻게 되는 셈이다. 미술과의 만남 한 번 시도해볼 만하지 않은가.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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