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진 회장 "임금비싼 한국에 공장 짓는다니 미쳤다네요"

입력 2013-06-24 17:14   수정 2013-06-25 03:14

CEO 투데이

부친이 세운 아남반도체
외환위기때 어려움 겪자 외자유치해 공장만 인수

내 인생자체가 모험 연속…한국인 열정·기술 믿어




“인천 송도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하니 친구들이 다들 ‘미쳤다’고 하더군요. 팔순을 앞두고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느냐는 거죠.”

김주진 앰코테크놀로지(앰코) 회장(77·사진)은 24일 “몇몇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고국 땅에 투자하는 걸 쉽게 접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남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향수 앰코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 회장은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한국인의 열정과 기술을 믿었다”고 대규모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반도체 후공정(패키징·테스트)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앰코는 독특한 글로벌 기업이다. 생산기지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필리핀 등 5개국에 있지만 경영은 김 회장을 비롯한 한국인이 맡는다. 자본 투자는 주로 미국에서 이뤄진다. 임직원 2만여명 중 6000여명이 한국인이지만 투자자가 대부분 미국인이어서 송도에 2019년까지 1조5000억원을 들여 연구·개발(R&D) 센터와 생산라인을 짓기로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김 회장은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사회 멤버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승낙을 얻었다”며 “내 인생 자체가 모험의 연속이었는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고 했다.

이 말대로 그는 젊어서부터 고생을 자처했다.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 “더 큰 세상을 보고 싶다”며 만 19세 때인 1955년 미국으로 혼자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와 빌라노바대 등에서 10년간 교수 생활을 하다 1968년 다시 경영자로 돌아왔다. 다들 힘들다고 뜯어말리던 반도체 사업을 국내에서 처음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경영 방식도 모험에 가까웠다. 선친인 김 명예회장이 한국에 아남반도체를 설립해 생산을 맡고, 김 회장은 미국에 앰코라는 법인을 만들어 R&D와 판매를 담당했다. 1980년대 들어 세계 1위 반도체 패키징업체로 발돋움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에 발목을 잡혔다. 아남그룹이 반도체 외에 가전 건설 등으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한 게 화근이 됐다.

미국에서 반도체 사업만 하던 김 회장은 다른 계열사는 모두 포기하고 아남반도체 공장만 인수했다. 그것도 외자유치를 통한 방식을 택했다. 1998년 미국 법인인 앰코를 나스닥에 상장한 뒤 5년간 27억달러의 외자를 한국에 들여왔다. 자연스레 아남반도체의 사명은 앰코의 한국법인을 뜻하는 앰코코리아로 바뀌었다. 이후 생산 중심지를 중국이나 필리핀 등지로 옮길 수 있었지만 그 때마다 김 회장은 한국을 고집했다.

반도체도 자동차처럼 ‘조립의 예술’이라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김 회장은 “반도체 패키징은 단순히 칩을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모든 전자제품을 최적화해주는 핵심 공정”이라며 “첨단 기술 없이는 절대 세계 1위가 될 수 없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기기에까지 들어가는 등 반도체 적용 분야가 넓어질수록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이런 첨단 공정을 발전시키는데 한국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50년 이상 미국에 살아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향수병이 심해지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한국에 대한 투자를 더 늘려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81년 600만달러를 기부해 펜실베이니아대에 한국학 과정을 만드는 등 해외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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