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씨 "진취적이고 즐거운 아리랑으로…恨 섞인 민족 정서 바꿔볼게요"

입력 2013-06-25 16:54   수정 2013-06-25 21:22

연극 외길 50년 오태석 씨 소리극 '아리랑' 연출

직접 연기 시범 보이며 하루 10시간 이상 비지땀…26일부터 국립국악원 무대



연극 외길 50년을 걸어온 장인의 고집은 여전했다. 확성기를 쓰지 않고 소리꾼들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극장을 채우고, 배우들의 표정을 가리던 짙은 분장을 훌훌 벗겨냈다. 맨 얼굴에 맨발로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객석과 벽이 허물어지니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올해 일흔셋인 연출가 오태석 씨(사진)는 아직도 무대에 올라 직접 연기 시범을 보이며 하루 10시간이 넘는 강행군을 소화한다. 쉬운 길을 놔두고 부러 돌아가는 그를 연극인들이 ‘자존심’처럼 떠받드는 이유다.

소리극 ‘아리랑’의 연출을 맡은 오씨를 25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만났다. 26~30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민요와 극이 합쳐진 형식의 공연. 한반도가 통일된 2018년 카자흐스탄을 배경으로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골을 고국으로 봉환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그렸다. 국립국악원이 국고 2억5000만원을 지원받아 제작했다. 앞으로 3~4년간 국악원에서 매년 정기 공연된다. 그는 왜 지금 여기에 다시 아리랑을 불러 왔을까.

“진취적이고 즐거운 아리랑을 젊은 사람들이 접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아리랑은 어떤 사연을 얹든 노래가 되는 불가사의한 곡인데 지금껏 한(恨)이 섞인 아리랑만 불러 왔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36년의 일제 식민지 시절 굴욕을 당했고, 곧이어 한반도에 이데올로기가 들어와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남북을 갈라놓은 DMZ도 있고요. 이렇듯 우리 자신을 폄하해 온 세월이 있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고 얼마든지 당당하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걸 아리랑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남북통일이 된 가상의 이야기라 극을 만드는 데 힘든 점도 많았다. 그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걸 보며 벅찬 감동을 느꼈던 관객에게 이번 무대에서도 그런 감동을 줘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며 “연극이 감동을 주려면 허구의 이야기로 현실을 두드려야 하는데 그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당 단원들과 오씨가 대표를 맡은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 단원들이 배우로 출연한다. 연기를 해보지 않은 국악단원과 작업하는 게 힘들지는 않을까.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은 배우입니다. 엄마가 하는 걸 흉내 내면서 크니까요. 저는 성장하면서 잠시 닫아놓은 연기 능력이 담긴 그 방을 쓰게 하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오씨는 1963년 희로무대 창단 이후 극작가, 연출가, 제작자로 활동하며 60여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 왔다. 그의 작품엔 항상 관객이 중심에 서 있다.

“연극은 관객 때문에 존재합니다. 저희는 재료만 손질해 놓을 뿐입니다. 잘 씻어놓은 무, 두부 김치, 손질한 조기, 간장 고추장 된장 등을 상에 차려 놓는 게 저희 몫이죠. 관객 여러분이 오셔서 저희가 준비한 재료를 생으로 드셔도 좋고 찌개를 만들어 드셔도 좋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먹을지 고민하는 게 관극의 묘미 아닐까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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