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타는 맛 알아야 만든다…진짜 핸들 잡는 '잡초' 카레이서…끊임없는 '가이젠'으로 부활 액셀

입력 2013-06-27 15:30  

글로벌 CEO -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

창업주 4대손 특혜는 없다
일반 채용절차 거친후 영업현장 근무…계장 승진후 업무실수로 평사원 강등

5년 만에 영업익 1조엔 넘어
가이젠 효과로 4500억엔 이익…엔저로 인한 이득보다 세 배 많아

사업조직 시장 위주 재구성
부사장단 60세 안팎으로 교체…라이벌 GM 부회장 사외이사로




지난달 17일,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뉘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주대회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耐久) 레이스’장에 모리조(Morizo)란 이름의 선수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슈퍼카 ‘렉서스 LFA’를 타고 경기장에 등장했다.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리조는 다름아닌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57)이었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자동차 기업들이 자사 차량의 성능과 내구성을 시험하고 경쟁하는 경기다. 총길이 25㎞에 달하는 난(難)코스를 24시간 내내 150바퀴 이상 쉬지 않고 돈다. 한 회사에서 여러 명의 선수가 팀을 짜서 출전하며, 선수들은 쉬는 시간 동안 경기장 한쪽에서 쪽잠을 잔다.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상당한 데다, 크고작은 사고도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지구상 최악의 레이스’로 꼽힌다. 이런 경기에 도요타 사장이 직접 선수로 나오면서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은 들썩였다.

“자동차회사 사장이 자동차 타는 맛을 모르면 안 된다”는 도요다 아키오는 격렬한 카레이싱을 즐기고, 명함에 자신을 캐릭터화한 마크를 새기고 다닌다. 일본의 전통적인 제조업계 수장들과는 다른 행보를 나타내고 있다.

○창업주 4대손, ‘특별대우’는 없었다

도요다 아키오는 도요타 창업 일가의 4세이자 도요다 쇼이치로 전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1956년 나고야에서 태어나 게이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밥슨칼리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뉴욕의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부친의 권유로 1984년 도요타에 입사했다. 2000년 이사에 취임한 뒤 2002년 상무, 2003년 전무, 2005년 부사장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경영 승계를 준비해왔다.

언뜻 보기엔 전형적인 ‘온실 속의 화초’이자 ‘재벌가 도련님’의 이미지다. 하지만 실제 그의 회사생활은 ‘잡초’에 더 가까웠다. 아버지와 외부 경영진으로부터 혹독하게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도요타 사장을 지낸 도요다 쇼이치로는 아들에게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면접 등 일반 사원과 동등한 절차를 거쳐 입사하도록 했다. 아키오의 첫 부서는 생산관리 및 영업 부문이었다. 사내의 가장 핵심 부서이자 밑바닥 현장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키오가 계장이었을 때 작은 실수를 했다. 다른 직원 같았으면 시말서 작성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요다 쇼이치로는 아들의 직급을 평사원으로 강등시켰다. 특히 “아키오의 일을 부하에게 대신 책임지도록 하는 사람은 지금의 도요타엔 없다”는 게 도요다 쇼이치로의 철칙이었다. 회사에서 아키오를 대놓고 ‘모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다간 즉시 도요다 쇼이치로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키오는 “아버지는 ‘직언하는 부하를 믿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며 “그 때문에 내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이들보다 나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을 더욱 신뢰했다”고 평사원 시절 당시를 회상했다.

아키오가 사내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건 1998년 자동차 종합정보 사이트 ‘가주닷컴(Gazoo.com)’을 만들면서부터였다. 이 사이트를 통해 도요타의 이미지를 더욱 친근하게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그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의 합작법인 누미의 부사장이 됐고, 2000년 44세에 도요타 최연소 이사로 승진한 뒤엔 중국 등 아시아 지역 영업전략 업무도 맡았다.

○“사장이 된 뒤 한 일은 사죄뿐”

2009년 6월, 도요다 아키오는 도요타 사장으로 취임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도요타 수장이 된 그에게 사장직은 결코 영광의 자리가 아니었다. 아키오가 사장이 되기 한 달 전인 2009년 5월9일, 도요타는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4610억엔의 대규모 영업이익 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도요타가 영업적자를 낸 건 창사 후 71년 만에 처음이었다. 무리한 확대 경영에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불러온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겹친 탓이었다.

시련은 계속됐다. 때마침 프리우스를 비롯한 도요타 브랜드 차량에서 급발진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대규모 리콜 사태로 번졌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도요타가 글로벌 전역에서 리콜한 차량은 1018만대에 달했다. 2011년엔 세계 1위 자동차 판매사란 타이틀까지 내려놓으며 GM과 폭스바겐에 밀려 3위로 주저앉았다.

아키오 사장은 2010년 2월 미국 하원의회 청문회장에 섰다. 그는 급발진 사고 사망자 유족들에게 울먹이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일부 미국 언론에선 “아키오는 좀 더 허리를 숙였어야 했다” “아키오의 눈물에 진실성이 있는가”라며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지난해 12월 콜린 파월 미국 전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 아키오 사장은 “나에겐 사장(社長)의 사(社)자가 사죄(謝罪)의 사(謝)자였다”고 말했다. 두 한자의 발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자신의 상황에 빗댄 것이었다. 대규모 적자와 리콜 사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각종 고비를 넘기며 고객과 주주, 직원들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는 “사장이 된 후 3초 안에 직감으로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며 “직감으로 결정할 때는 그 결정 때문에 고생하게 될 이들의 얼굴을 우선 떠올리곤 한다”고 덧붙였다.

○가이젠 정신, 새 변곡점에 서다

지난달 8일 도요타는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1조3209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도요타의 영업이익이 1조엔을 넘은 건 5년 만이었다. 아키오 사장은 “‘가이젠(改善·도요타의 혁신활동) 정신’을 바탕으로 한 집념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실제로 작년에 거둔 영업이익 중 비용 삭감에 의한 효과가 4500억엔에 달한다는 것이 회사 측의 추산이다. 엔화 가치 하락에 의한 추가 이익(1500억엔)보다 세 배가량 많은 규모다.

도요타는 지난 4월1일자로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아키오 사장은 유임돼 5년째 회사를 이끌게 됐다. 회장이던 조 후지오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우치야마다 다케시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4년 전 아키오 사장 취임 당시 함께 임명됐던 부사장 5명 중 4명이 교체됐다. 이로써 부사장들의 평균 나이는 67세에서 60세로 낮아졌다.

조직 구조는 뿌리부터 바뀌었다. 기획과 생산, 영업과 연구개발 등 기능 위주로 구성했던 사업 조직을 렉서스(도요타의 고급차 브랜드)·부품·제1도요타(북미 유럽 일본 담당)·제2도요타(기타 신흥국 담당) 등 철저히 시장 위주로 재구성했다. 무엇보다 라이벌인 GM의 부회장이었던 마크 호건을 사외이사로 발탁한 것은 큰 화제가 됐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일본 제조업계에서 외국인을 사외이사로 내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해외영업 책임자들도 현지인을 대거 기용했다.

아키오는 지난달 8일 실적발표회에서 “우린 엔저(低)든 엔고(高)든 환율 변동엔 관심없다”며 “끊임없는 가이젠을 통한 품질경영만이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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