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규제는 풀고, 투자는 격려하고…

입력 2013-06-27 17:26  

늘어나는 규제에 말라가는 투자…창조적 산업경쟁력 무너질 수도
일자리 창출 위한 투자환경 절실

유지수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



일전에 한 연기금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국내 연기금의 운용 수익률은 2~3% 선으로 대동소이하다고 했다. 연기금의 투자에 대한 규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연기금은 포지티브 리스트에 들어 있는 것에만 투자할 수 있으니 어떤 창의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규제가 금융산업을 낙후시켰다는 얘기다.

규제는 사고의 폭을 좁게 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만4000여건의 각종 규제가 있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무려 두 배나 규제가 늘었다. 대통령마다 규제를 줄이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규제의 수도 그렇지만 내용 또한 문제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탓에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근로시간면제심사위원회는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임 노조위원장을 둘 수 있는 내용의 ‘근로시간 면제한도’ 조정안을 의결했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중소기업 대부분은 가뜩이나 일손이 달려 애를 태우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없는 일손을 빼 노조 일을 전담케 하는 이런 규제 탓에 하루하루 생존에 허덕이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심정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손자기업까지 거느린 한 정보기술(IT)분야 대기업 임원이 규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들었다. 신규순환출자가 금지되면 손자기업이 자회사를 만들 때 100% 출자해야 한다. 손자기업이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게 외국인의 투자를 걷어차는 꼴이 되는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규제만능주의에 빠진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법으로 누르고 제한하려는 생각부터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문제 해결 방법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소위 ‘일감몰아주기 방지법’ 등의 개정안은 특히 걱정된다. 그룹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막는다며 계열사 간 이익이 나는 행위 모두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어서다. 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위해 꼭 필요한 계열사 간 거래가 있는 게 사실이다. 유럽의 전자·자동차회사들은 오히려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이 만들어 놓은 가치사슬 생태계에 대해 감탄하고 모방하려 하고 있다. 총수 일가를 때려잡기 위한 규제가 자칫 대한민국 산업경쟁력의 원천인 가치사슬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받는 제도를 만들었다. 경제적 논리대로라면 지각하는 엄마의 수는 줄어야 한다. 그러나 늦게 애를 데리러 오는 부모는 더 늘기만 했다. 벌금을 내면 된다는 생각에 지각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어린이집은 벌금제도를 없앴는데 그런데도 부모의 지각률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규제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다. 잘못된 규제에서 비롯된 행위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한 세미나에서 규제가 실물경제를 바꾸어 놓으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규제일수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까닭이다.

나라 경제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4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5%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4.0%나 줄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으로 세계 경제는 불안하게 요동치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려면 대기업이 투자를 선도해야 한다. 국가는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정책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규제에 매달릴 게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도록 격려하는 규제의 폐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규제가 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과 차이가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뜻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 jisoo@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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