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제목·배열·천사가 든 트로피…메시지를 느껴라

입력 2013-06-28 16:53   수정 2013-06-28 22:49

정석범 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2) 그림 감상의 순서


한 여인이 무릎 위에 앉힌 어린아이를 다소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 왼편에는 다섯 명의 아이가 비좁은 공간에 서 있고 오른쪽 뒤편에는 대리석제의 하얀 기둥과 함께 고대 복장을 한 한 남자가 눈에 띈다.

이 그림은 매너리즘(르네상스 말기)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파르미자니노(1503~1540)가 그린 작품이다. 처음 이 그림을 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또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난감할 것이다. 그림 감상의 첫 번째 단계는 그림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림만 보고서는 알기 어렵다고 얘기할지 모른다. 당연한 얘기다. 근대 이전의 그림들 특히 신화를 다루거나 종교적 목적으로 그려진 작품들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담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땐 일단 제목을 검토해보는 것이 좋다.

이 그림의 제목은 ‘긴 목의 성모’다. 일단 그림의 주인공이 성모 마리아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그의 무릎 위에 앉힌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왼쪽의 어린 소년들이 천사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성모와 아기 예수를 등장시킴으로써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작품 제목에 ‘긴 목의’라는 수식어는 성모의 목이 유난히 길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여기에는 대상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매너리즘 화가들의 특성이 드러나 있다.

감상의 두 번째 단계는 그림 속의 장면들이 어떻게 배열됐느냐 하는 점이다. 보통 그림 속 장면은 마치 무대 위의 연극처럼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을 의식하고 장면을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단 감상자의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면 중심에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다. 성모 좌우에 천사의 무리와 고대 복장을 한 남자가 자리하고 있다. 전형적인 삼각형(혹은 피라미드식) 구도를 취하고 있다. 삼각형 구도는 보는 이에게 가장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구도로 르네상스 시대 이후 많이 채택된 구도다.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림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진 것은 분명한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맨 왼쪽의 천사는 트로피 모양의 금속제로 추정되는 물체를 들고 있는데 그는 왜 이것을 들고 있는 것일까. 그림 속에 묘사된 물건들은 화가들이 그림의 의미를 풀 수 있는 단서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트로피를 좀 꼼꼼히 살펴보라. 뭔가 십자가 모양의 형상이 보이지 않는가. 바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게 될 아기 예수의 운명을 예시하고 있다. 성모가 수심에 어린 표정으로 예수를 내려다보는 것은 그런 아이의 안타까운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른쪽의 남자는 누구일까.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그는 히브리어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해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발돋움하는 기틀을 마련한 히에로니무스다. 그런데 성화에서 성모자와 히에로니무스가 함께 묘사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둘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히에로니무스가 활동하던 시기에 기독교계 일각에서 성모는 동정녀가 아니며 남편 요셉과의 부부 관계를 통해 자녀를 잉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히에로니무스는 이에 맞서 383년경 마리아의 동정수태를 주장하는 장문의 글을 발표한다. 그림에서 히에로니무스가 들고 있는 두루마리가 바로 그것이다. 화가는 이런 사실을 그림 한편에 삽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작가가 이런 그림을 그린 배경은 뭘까. 이 점은 히에로니무스 옆에 우뚝 서 있는 대리석 기둥에 함축돼 있다. 기독교에서 대리석 기둥은 흔들림 없는 믿음의 상징이다. 그런데 기둥 뒤편 하늘엔 먹구름이 자욱하게 드리워져 있어 기독교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이 그림은 르네상스 말기를 휩쓴 종교개혁 움직임에 맞서 전통적 가톨릭에 대한 믿음을 수호할 것을 촉구하는 시각적 표어로 제작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림 감상이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색채와 형상의 아름다움이라는 더 큰 감상의 묘미가 기다리고 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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