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거르쿨트르 무브먼트 '칼리버 875' 조립해보니
“스위스 르상티에에 있는 예거르쿨트르 매뉴팩처(시계를 만드는 공방)를 그대로 재현했어요. 원목 책상부터 연장 하나하나까지 모두 비행기로 공수해 온 거예요.”
명품시계 예거르쿨트르가 최근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서 개최한 ‘마스터 클래스’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자 김면정 브랜드매니저는 “시계 장인(匠人)들이 작업할 때 입는 옷”이라며 흰색 가운부터 건넸다. 머리띠처럼 생긴 돋보기를 쓰고, 엄지손가락에 골무를 끼우고, 드라이버와 핀셋을 잡으니 진짜 시계 기술자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1833년 탄생한 이 브랜드는 무브먼트(동력장치)에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180년 동안 만든 무브먼트가 1242종에 달하고, 이 중 398종은 특허를 받았다. 부품 제작에서 조립, 후처리까지 모든 공정을 100% 자체 수행한다. 이날 마스터 클래스는 예거르쿨트르 본사의 시계 장인 자노 뤼노비크와 함께 시계의 핵심인 무브먼트를 직접 조립·분해해보는 행사다. 무브먼트는 ‘시계의 심장’이라 불리며, 명품시계 브랜드의 기술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기자의 앞에 놓인 무브먼트는 ‘칼리버 875’. 예거르쿨트르의 간판인 리베르소 컬렉션의 ‘리베르소 그랑 데이트’에 들어간다. 시침과 분침뿐 아니라 다이얼(시계판)에 보이는 별도 초침 창, 날짜 창,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남은 작동 시간을 표시해주는 창) 등 모든 기능을 제어한다.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시계의 동력을 풀어주는 것.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해체 작업 중 나사가 튀어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일락 말락 한 구멍에 핀셋을 집어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몇 번의 실수 끝에 좁쌀 만한 나사들을 빼내 무브먼트를 덮고 있던 브리지(판)를 뜯어냈다. 워낙 작은 부품을 만지다 보니 금세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가로 2.52㎝, 세로 3.12㎝의 작은 무브먼트에 60개 넘는 미세한 부품이 오밀조밀 붙어 있어서다. 특히 지름이 1㎜도 안 되는 나사들은 점처럼 보였다. 핀셋으로 집다 조금만 삐끗하면 휙 튕겨나갔다. “죄송한데… 나사가 없어졌어요”라는 말을 네 번째 반복하자니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뤼노비크는 “무브먼트 조립은 정밀함이 요구되는 민감한 작업”이라며 “스위스 시계 장인들도 칼리버 875 하나를 조립하는 데 네 시간씩 걸린다”고 설명했다. 시계 장인들은 전문학교에서 3년간 이론교육을 받은 뒤 수없는 실습을 거쳐 경력을 쌓아가야 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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