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1964)는 한국영화 최초의 항공 드라마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전우애와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서울 인구 250만명의 10분의 1인 25만여명을 열광시키며 대박을 거뒀다. 아시아영화제 감독상(신상옥), 남우주연상(신영균), 편집상까지 휩쓸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6·25 때 한국 공군사 유일의 203회 출격기록을 세운 유치곤 장군이다. 영화 내용도 유엔 공군이 500번이나 실패했던 대동강 승호리철교 폭파작전의 성공을 다룬 것이었다. 반공영화의 한 극점인 이 필름을 북한 김정일이 구해 소장했던 걸 보면 영화나 실제 전투나 정말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공군 파일럿의 상징이 왜 하필 ‘빨간 마후라’일까. 붉은 머플러를 조종사의 심볼로 만든 이는 김정렬 초대 공군 참모총장의 동생인 김영환 장군이다. 그 기원설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식별설(說)이다. 1951년 강릉기지 제10전투비행전대장(대령)이던 그가 추락한 아군 조종사의 수색 방안을 논의하던 중 어디에서나 눈에 잘 띄는 빨간색 머플러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이후 강릉시장의 빨간 인조견을 사 모아 출격하는 조종사들의 목에 둘러줬다고 한다.
또 하나는 치맛단설이다. 그가 출장차 서울 형집에 들렀을 때 형수가 치마를 만들려고 둔 빨간 천을 보고 ‘조종복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에 자투리 옷감으로 머플러를 만들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평소 독일 공군 스타일의 모자와 부츠를 애용해 멋쟁이 소리를 듣던 그의 패션 감각도 한몫했다. 그는 빨치산 토벌 때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킨 주인공이다.
‘빨간 마후라’를 군가(軍歌)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한운사 작사·황문평 작곡의 영화 주제가였다. 아무튼 이 멋진 제목은 영화보다 2년 앞서 방송 드라마로 선보였고, 1990년대 후반에는 같은 제목의 10대 포르노물 때문에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비(정지훈)와 신세경 주연의 후속편 ‘비상’으로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49년 전 편대장 역으로 출연했던 주연배우 신영균 씨와 순직한 조종사 부인 역을 맡았던 최은희 씨가 어제 영화의 배경인 수원공군기지를 방문해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F-51(무스탕)이 처음 출격한 1950년 7월3일을 기념하는 조종사의 날이다. 일본에서 급히 공수한 F-51 10여대로 226대의 적기와 맞섰던 ‘하늘의 사나이’들…. 가난한 조국 하늘에서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을 불살랐던 그들은 지금 최신 전투기만 460여대 갖춘 대한민국 공군의 빛나는 별이자 영원한 ‘마후라’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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