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기관 간 협력이 절실한 이유
김도연 <서울대 초빙 교수, 前 국가과학기술위원장>
어느 시대건 인류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지닌 몇몇 사람들에 의해 방향이 바뀌며, 이들이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일에 매달리며 경쟁하는 일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이런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지만 이를 통해 성과가 얻어지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연구개발(R&D)에서도 경쟁은 마찬가지다. 제품개발을 위한 응용연구는 시간과의 경쟁이고, 기초연구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타이밍이 전부다(Timing is everything)’라는 서양 속담은 아마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1876년 2월14일 오전, 벨은 각고의 노력 끝에 전화기를 발명해 특허청에 서류를 제출했고, 그 후 잘 아는 바와 같이 이를 기초로 ‘벨 텔레폰’이란 회사를 세워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이 경쟁에서 패자가 된 불행한 연구자는 엘리샤 그레이. 대장장이, 목수 등으로 어려운 젊은 시절을 보낸 그레이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고등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친 후, 전화기 발명에 인생을 걸었다. 마침내 1876년 2월14일 오후, 그레이는 자신의 발명품인 전화기의 특허서류를 접수처에 냈다. 결국은 바로 그 몇 시간 차이 때문에 미국 특허국은 전화기 발명특허를 벨에게 내주었고 절망한 그레이는 역사 속에 묻혀 버렸다. 제품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R&D에서 남보다 빠른 특허 취득은 이렇게 생명을 거는 경쟁이다.
벨의 전화기는 그 당시 널리 쓰이던 무선통신기를 개량해 목소리 그 자체를 전달하는 획기적인 것으로, 응용연구의 대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기초연구란 무엇일까. 역사를 되돌아 보면 인류 문명은 순전히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 과정에서 큰 도약이 이뤄지곤 했다. 밝은 조명을 얻기 위해 아무리 촛불의 개량과 응용을 연구해도 전기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류에게 전기라는 밝은 빛을 가져다 준 패러데이의 실험은 순전히 그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기초연구는 미래의 삶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이며 가시적인 성과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에 대한 지원은 결국 공공기관이나 정부가 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초연구는 물리, 화학 등의 자연과학 분야에만 한정된 것은 물론 아니다. 모든 학문 분야, 즉 공학에도 있고 의학에도 있으며 인문사회학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기초연구다.
이런 기초연구는 사실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사과가 왜 옆으로 혹은 위로 떨어지지 않고 항상 땅에 수직으로 떨어지는가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뉴턴은 이를 풀어내기 위해 20년이란 각고의 연구기간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그 답을 중력 이론으로 발표했다. 뉴턴이 식사하는 일도 종종 잊은 채 하루종일을 문제 해결에 몰입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스스로와 경쟁하며 연구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연구자는 이런 치열한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알며 오히려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연구를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연구자가 아니다. 좋은 연구 성과는 연구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산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구에 진력해 탁월한 성과를 내는 연구자에게 더욱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R&D는 똑같이 나누는 평등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치열한 R&D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다름 아닌 협력이다. 특히 현대의 과학기술 R&D는 혼자 하기엔 이미 너무나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연구자와의 긴밀한 협력이 없다면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간의 과학기술은 분화되면서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는 한 명의 탁월한 개인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21세기 들어 새로운 지식과 시장을 창출하는 융합과학기술은 서로 다른 분야 연구자들의 협력으로 가꾸어지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 연구기관 간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대한민국의 연구자들은 이제 경쟁과 동시에 협력의 문화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김도연 <서울대 초빙 교수, 前 국가과학기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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