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찾은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유럽 최대 항만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썰렁했다. 배에서 컨테이너를 끌어내리고, 야적장에서 이를 트레일러에 옮기는 크레인만 분주히 움직일 뿐 근로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닉 우예바 로테르담항만청 물류담당 매니저는 “항만 처리 과정의 90% 이상이 자동화 설비로 이뤄진다”며 “고객이 예정된 시간 안에 화물을 받을 확률은 95%에 달한다”고 말했다. 1990년 초 도입한 로테르담항의 자동화 설비는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다. 기자와 동행한 원승환 군산대 물류학과 교수는 “기계인 만큼 하루 24시간, 1주일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며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서 로테르담항이 파업 걱정 없이 높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로테르담항이 자동화 시스템을 다른 선진국보다 한발 빨리 도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옆에 있던 강무홍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항만·운영 기술연구실 연구원은 “당시 노·사·정 회의를 열어 나라 경제를 우선 살리자는 전제 아래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는 대신 임금을 동결하고 조기퇴직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덕분”이라고 거들었다. 이 같은 양보가 자동화 설비 도입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로테르담항이 연간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부산항의 8배에 이른다.
‘동북아 물류 허브’를 꿈꾸는 부산항의 모습은 어떨까. 자동화는 곧 감원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노조의 반대로 지연되다가 2006년에서야 도입됐다. 2005년부터 취업·인사 비리로 물의를 빚었던 부산항운노조는 2010년 자정결의를 하면서 항만노무 독점공급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지만 비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근로자를 고용하려면 아직도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노조 간부가 채용을 대가로 금품을 받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이런 노조의 벽에 막혀 자동화가 늦어진 부산항은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5위 자리를 위협받는 신세다. “그나마 부산항은 화물처리 속도나 정확도에 있어서 다른 항만에 비해 뒤질 게 없다”면서도 “다만 잦은 파업으로 인해 화물 배송 지연이 잦아지는 것은 부산항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로테르담항 관계자의 충고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김우섭 경제부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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