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 살펴볼 논술 주제는 학생들에게 친숙하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비슷한 상투적인 답안을 써내는 주제인 세계화이다. 세계화 문제만 나오면 거의 반사적으로 “교통과 통신의 급속한 발달로 지구촌은 하루가 다르게 좁아지고 세계인은 서로 가까워지는…” 등의 문구가 등장하는 답안이 속출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답안이 대개 비슷하게 낮은 득점을 하는 이유는 현상의 대강만 보고 분석 없이 써내려가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경제, 소비, 사회, 문화, 교육, 학문, 정치 그리고 종교와 우리의 의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다. 때문에 어떤 문제라도 모든 영역을 다 다룰 수 없고, 그래서 답안도 어떤 영역의 세계화인지 분석이 이뤄진 후 접근해야 한다. 세계화를 다룬 기출문제를 일부만 보자.
2011 숙명여대 수시 (3교시-공통) : 세계화 (정부 기능의 약화)
2011 성균관대 수시 (2교시) : 세계화의 영향
2011 서강대 모의 : 세계화의 문제점과 여성성의 가치
2009 경북대 수시 2-2 :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 문제는 경제다
‘세계화’라는 단어가 논제에 등장하지 않아도 의미상 세계화 흐름에 대한 분석·고찰이 필요한 문제는 위에 열거한 문제보다 훨씬 많다. 다문화사회나 문화적 혼종을 다룬 문제들도 큰 틀에서 세계화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지구촌은 좁아지고 있고 국가 간 장벽은 낮아지고 있다. 이것이 세계화다. 그렇다면 세계화를 추동하는 힘은 무엇일까? 교통과 통신의 발달? 기술발전? 이렇게만 서술하면 반쪽짜리 답안이다. 변화의 뿌리에는 경제가 놓여있다. 좀 더 길게 서술하면 성장하는 자본주의가 세계시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인도와 기타 저개발국가에 있는 공장에서 매일 6억 병이 생산되어 남극을 제외한 전 세계에 판매되는 코카콜라를 생각해보라. 코카콜라가 상징하는 초국적기업 혹은 거대자본은 우리의 경제를 바꾸고 소비를 바꾸고 문화, 교육, 정치에 영향을 주고, 급기야는 우리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세계화의 힘이다.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대중매체에서는 환상과 불안을 동시에 유포하곤 한다. 좁아지는 지구촌이나 보다 가까워진 외국인·외국 문화들을 언급하는 것은 환상이고, 국제적인 흐름이나 세계적인 변화에 눈감아선 안 된다는 담론 혹은 그들과 경쟁하여 미래를 대비해야 함을 강조할 때는 불안을 유포하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규모의 경제 불황을 겪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어떤 것이나 실감나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그러나 환상이나 불안이나 세계화의 본질을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나이키 신발을 신기도 하고 미국의 투자기업 론스타가 소유한 외환은행에 저금을 하기도 한다. 이것뿐일까. 이탈리아 람보르기니는 독일 아우디가 인수했고 아우디는 또 독일 폭스바겐이 인수했다. 제일은행이나 대우자동차는 사라졌고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미국 GM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사실 저런 기업들에 국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런 생활상이나 상품들의 변화가 실질적으로 소비자에게 혹은 국민들에게 이로움을 주었는가이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좋아졌는지 아니면 가격이 싸졌는지 잘 판단이 되지 않는다면 일단 물음표로 남겨두어도 좋다. 좋은 게 좋은 거고, 경제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인류의 생활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논술 문제로 출제될 이유가 없다.
▧ 경제적 세계화를 바라보는 두 시각
<제시문 1>
지난 20년 동안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90~2000년 사이 관련 통계 자료를 얻을 수 있는 20개 선진국 중 무려 16개국에서 소득 불평등도가 올라갔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도는 선진국 중 최악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우루과이나 베네수엘라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6년 사이에 미국의 소득 순위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서 23%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핀란드, 스웨덴, 벨기에도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증가했는데, 이 나라들은 이전에 불평등 정도가 매우 낮았던 나라들이었다. 소득 불평등도가 올라가지 않은 나머지 4개국 중에서 소득 불평등도가 의미 있을 정도로 낮아진 나라는 스위스밖에 없었다.
<제시문 4>
세계화를 통해서 분업이 전 지구적인 수준으로 확산되면, 저비용 고효율의 생산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어 경제발전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헤리티지재단은 ‘2007년 경제자유지수’를 발표하였는데, 세계화와 더불어 경제적 자유화가 빠르게 진전되어 발전이 가속화되고, 가난한 국가의 국민소득이 높아져서 전 세계에서 빈곤층의 비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빈곤의 기준을 세계은행의 정의에 따라 연소득 495달러로 볼 때, 빈곤층 비율은 1970년 세계인구의 15.4%에서 2000년에는 5.7%로 감소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하루 1달러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의 숫자가 12억 명에서 40% 정도 줄어들었다.
경제적 세계화가 가져온 영향에 대한 두 개의 제시문이다. <2011 성대 수시2차 기출문제>에서 뽑은 것인데, <제시문 1>은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제시문 4>는 세계화의 긍정적 영향을 말하고 있다. 논지만 추출한다면 <제시문 1>은 “세계화로 인해 선진국의 소득불평등이 커졌다.”이고, <제시문 4>는 “세계화를 통해 빈곤층이 감소했다.”이다. 어찌 보면 모순되는 것 같은 내용이다. 우선 <제시문 1>을 이렇게 정리해보자. 후진국은 원래부터 빈부격차가 크게 나타난다. 그런데 세계화로 인해서 선진국 국민들의 소득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즉, 그 사회의 평균소득수준과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상대적 빈곤층’이 많아지는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반면 <제시문 4>에서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빈곤층 비율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굶어 죽기 직전의 사람들, 즉 ‘절대적 빈곤층’은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두 얼굴이다.
따라서 위 두 개의 제시문은 양립 가능하다. 둘 다 진실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표를 보면서 <제시문1>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은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의 소득 격차가 매년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중요시한다. 같은 표를 보면서 <제시문 4>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은 모든 국가의 소득이 매년 늘고 있다는 점과 고소득 국가의 점유율이 줄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입장이 옳으냐에 대한 답은 있을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둘 다 진실이기 때문이다. 남은 문제는 세계화의 악영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일 것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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