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乙보호법'…공무원 힘만 커져

입력 2013-07-07 17:11   수정 2013-07-08 06:14

이슈 분석
"현저히·상당히·부당한 …" 해석 재량권 늘어나

< 乙보호법 : 경제민주화법 >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 2일, 주요 로펌에 고객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종전엔 부당 지원 행위 요건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규정했으나 개정안(23조1항7호)에서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처벌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까지가 ‘상당히’냐”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법 조문이 추상적이면 하위 규정인 시행령에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지만 공정거래법 시행령에는 ‘현저히’나 ‘상당히’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도 없다.

자의적 해석에 대한 우려가 있는 법 조문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화학물질관리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 12조는 ‘공공복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경우’에는 기업들이 환경부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현저한’의 기준은 해당법 시행령에 나와 있지 않다.

지난 4월 개정된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비슷한 사례다. 이 법 272조2에서는 투자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으면 사모펀드 업무집행사원(GP)의 등록을 취소한다고 규정했으나 시행령에선 ‘현저히’의 범위를 정하지 않았다.

자본시장법과 하도급법 개정안에서는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지 말라’고 해놓았을 뿐 ‘어디까지가 부당한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시행령에서 부당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세법과는 딴판이다.

경제민주화 법안이 모호할수록 유권해석을 해야 하는 공무원의 힘은 더욱 막강해질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임의로 정하고, 환경부가 현저한의 기준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률 소비자인 개인과 기업은 변호사나 회계사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입법 과정에서 기업의 목소리를 반영할 목적으로 로펌과 회계법인들은 관련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과 국회의원 보좌관을 영입하는 데 혈안이다. 로펌과 회계법인이 경제민주화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정인설/정영효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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