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기업들 제2차 해외 탈출 시작됐나

입력 2013-07-10 17:22   수정 2013-07-10 21:52

1990년대 제조업 공동화를 겪은 한국 경제가 이제는 기업 엑소더스를 우려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올 상반기 대기업들은 국내에서 4조8459억원의 지분과 부동산을 팔어버린 반면, 해외에선 2조3791억원의 자산을 사들였다는 것이 본지와 에프앤가이드의 조사 결과다. 국내자산 매각은 전년 동기 대비 320%, 해외자산 인수는 56% 각각 급증했다. 조선 건설 등 불황업종은 알짜자산까지 내다팔며 목숨을 부지하는 한편에선 해외 자산을 사들여 성장엔진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조사 결과는 최근 전경련 심포지엄에서 전문가들이 경고한 기업 엑소더스가 이미 시작됐다는 방증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기업들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환경규제, 법인세 증세, 역주행 노동법규, 땅값, 전력, 세금, 물류비, 반(反)기업 사회분위기 등 9중고(重苦)에 처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일본 기업들의 6중고(엔고, 미진한 FTA, 높은 법인세, 전력 부족, 엄격한 환경규제, 노동규제)가 차라리 나아보일 정도다. 그러니 30대그룹 설문조사 결과 6곳은 당초 계획보다 투자를 줄이고, 4곳은 채용을 축소하겠다는 응답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위기로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 투자가 필수지만 오만군데 경제민주화 깃발을 세워놓고 기업의 손발을 묶지 못해 안달이다. 지난 5월 정부가 규제를 풀어 12조원의 합작투자가 가능해졌다고 호기롭게 선전했지만 정작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경제민주화라는 도그마에 빠져 여당은 외면하고, 야당은 대기업이 관련되면 무조건 특혜라는 식이다. 무슨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살아나겠는가.

사업전망이 밝다면 내버려둬도 스스로 투자하는 게 기업의 생리다. 그러나 전망도 나쁜 데다 모든 기업활동을 잠재적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유례없는 반시장적 정치환경에서 과연 누가 투자를 감행하겠는가. 소위 ‘87 체제’ 이후 강력한 노조의 등장과 중국의 개방이 맞물려 기업들이 앞다퉈 해외로 나갔고 그 귀결은 외환위기였다. 이제 2차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다. 경제민주화 광풍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겪어봐야만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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