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논의 활발하지만 생산성, 경제성장이 뒷받침돼야
최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
한국 근로자의 평균근로시간은 연간 2116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692시간에 비해 상당히 길다. 이 같은 장시간 근로를 줄이기 위해 주당 연장근로 상한으로 정해진 시간에 휴일근로 시간까지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연장근로 제한이 장시간 근로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만, 정작 평균 근로시간을 줄이는 효과는 미미하다. 더구나 많은 경우 장시간 근로는 법·제도적인 요인보다는 근로자와 기업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기대하는 효과를 얻으려면 평균근로시간, 소정근로시간, 그리고 장시간 근로라는 세 가지 개념을 구분해서 정책을 펴야 하는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의들은 이 개념들이 혼재돼 있어 정책 방향을 잘못 설정할 위험이 매우 크다.
첫째, 한국 근로자의 평균근로시간이 긴 것은 낮은 고용률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대부분 선진국의 고용률은 70%를 웃도는 반면, 한국의 고용률은 60%선에 불과해 10명 가운데 6명이 일하는 셈이다. 즉, 다른 나라 근로자보다 약 18%를 더 오래 일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OECD 국가 수준으로 평균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제대로 된 시간제 근로를 확산시켜 고용률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편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을 비롯한 상당수 선진국에서 평균근로시간 단축은 주로 시간제 근로의 확산 때문이었다. 여성 및 고령자 일자리도 시간제 근로의 확산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소정근로시간의 단축 문제이다. 이는 평균근로시간 개념과는 달리 전형적인 근로자가 주당 몇 시간 일하는가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임금이 상승하면 근로시간을 더 늘리려고 하지만, 동시에 임금상승으로 소득과 재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을 더 갖고 싶어 한다. 따라서 임금이 올라가면 근로시간은 증가할 수도 있고 감소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지속적인 임금 상승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왜 이런 현상이 한국에만 나타나는 것일까. 대부분 선진국들은 오랜 기간 높은 소득을 누려왔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반면 한국의 장년층은 현재 고소득을 유지해도 선진국처럼 부의 축적이 충분하지 못하고, 은퇴 후 노후보장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오랜 시간 일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특이한 점은 20대의 경우 형제·자매 숫자가 평균 1.9명에 불과하며 부모의 재산에 의지해 사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나빠지면 돈 많은 부모를 둔 청년층보다 아직까지 부모와 자식을 부양하는 장년층이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셋째는 일부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로 문제이다. 장시간 근로는 근로자 건강과 산업안전, 생산성 저하의 문제 등을 야기하므로 이를 해소하는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실근로시간을 줄일 경우 이것이 반드시 고용창출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이 따른다는 점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초과근로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이 줄어들어 소득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의 생산수준을 유지하려면 추가인력 채용과 더불어 추가적인 설비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장기적으로 해외이전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어려움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클 것이다. 근로자 중에서도 중소기업의 한계근로자가 대기업 근로자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무리 없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줄어드는 근로소득을 만회할 수 있게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아울러 사무직이나 연구직의 경우에는 획일적 근로시간 단축보다는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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