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오다큐백화점의 실패로 본 벤치마킹의 성공요인

입력 2013-07-11 15:30  

경영학 카페

이세탄백화점 방식 따라했지만 절실함 없고 조직문화 이해못해
4년만에 포기…'겉보다 속봐야'



최근 뉴스에 따르면 성장이 부쩍 둔화되면서 위기의식이 높아진 백화점들이 다시 ‘일본 배우기’에 나섰다고 한다. 한발 앞서 불황을 극복한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취지에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들은 도쿄와 오사카로 연수를 다녀왔고, 신세계백화점도 식품과 의류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일본에 보내 현지 백화점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왔다. 롯데는 2008년 이후 단일 점포 기준으로 세계 매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이세탄백화점과 최근 들어 최고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한큐백화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의 사례를 보고 배울 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연수를 다녀오고 사례를 분석하면 성과가 올라가는 걸까. 보고 따라하는 벤치마킹 과정에서 뭔가 빠트리고 있는 것은 없을까.

2000년대 초반 일본 백화점업계에서는 이세탄백화점을 벤치마킹하는 붐이 일었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백화점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이 와중에도 혼자 잘나가는 백화점이 이세탄이었기 때문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오다큐백화점은 이세탄을 집중 벤치마킹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이세탄의 인력을 스카우트하기도 했고 직원을 손님으로 가장해 이세탄에서 쇼핑을 하게 하기도 했다. 분석 결과 이세탄의 강점은 다른 백화점에 비해 판매적중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객이 정말 필요로 하는 상품을 진열,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을 구매로 유도하는 비율이 다른 백화점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

그 비결은 이세탄 직원들의 ‘머천다이징(merchandising) 노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머천다이징 노트는 상품에 대한 손님의 반응을 기록하는 작은 수첩이다. 이세탄 직원들은 철저한 교육을 통해 이 노트를 작성하는 법을 배우고, 매장에서 실천한다. 실제 판매 결과를 직원들이 서로 피드백하고, 자신의 머천다이징 노트와 비교해서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세시기 달력’이라는 것도 있다. 고객과 나눈 사소한 대화까지도 기록하는 메모장이다. 이세탄의 직원들은 이런 메모까지 서로 공유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바를 맞춰주려는 ‘고객 중심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오다큐백화점은 이세탄 방식을 따라 했다. 머천다이징 노트를 도입했고, 이세탄의 고위 임원과 간부를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2008년, 이세탄은 벤치마킹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했다.

오다큐백화점의 실패는 벤치마킹을 단순히 외형만 따라 하는 것으로 오해한 결과다. 이세탄백화점은 백화점업계의 후발 주자였다. 백화점을 지을 만한 노른자위 땅은 모두 선도업체들이 확보하고 있었다. 경쟁사에 비해 자본도 넉넉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은 적자가 몇 달만 계속된다면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컸다. 그들은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가 머천다이징 노트라는 것을 만들어내게 됐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백화점’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세탄 방식’은 수첩만 나눠준다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을 배려하는 종업원 개개인의 마음, 고객의 입장에서 최적의 상품을 고민하는 태도를 모든 임직원이 공유하는 조직 문화가 이세탄백화점의 성공 요인이다. 이세탄 방식을 벤치마킹하려면 먼저 직원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오다큐백화점의 분위기는 이세탄백화점과는 크게 달랐다. 오다큐백화점의 모기업은 오다큐국철이다. 예전에 오다큐백화점에서 적자를 보았을 땐 모기업에서 해결해 준 적도 있었다. 공기업 특유의 ‘철밥통 문화’ 덕분인지 오다큐백화점 직원들에게는 이세탄 직원들만큼의 절실함이 없었다. 귀찮고 힘든 이세탄 방식으로의 변화를 내심 반기지 않았음도 물론이다. 이세탄 방식을 도입한 초기 몇 년은 외형적으로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실행은 결국 4년 만의 공식적인 실패 인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벤치마킹을 원한다면 겉모습이 아닌 속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모범 사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조직 문화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난 뒤 그 방식이 자기 회사 조직에 옮겨질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할 때 비로소 돈을 버는 벤치마킹이 가능할 것이다.

이우창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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