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없는 도봉, 의정부로 '시네마 원정'
강서·양천·구로 등 서남권, 54개 불과 '문화사각지대'
일부 자치구 공연장, 콘텐츠 부실해 개점휴업
서울 도봉구 창동에 사는 박선영 씨(30)는 주말에 영화를 보기 위해 경기 의정부까지 나간다. 도봉구에는 영화관이 없기 때문이다. 인접한 노원구에 롯데시네마가 있지만 노원구민과 도봉구민이 모두 몰리는 터라 며칠 전 예매하지 않으면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다. 구청 민원실에 영화관을 유치하자고 건의도 해봤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동작구 상도동 주민 김지혜 씨(37)는 초등학생 아들 둘과 공연을 보러 대학로까지 간다. 동작구에는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전용 공연장이 하나도 없는 데다 가끔 구청 복지센터에서 하는 초청공연은 수준이 낮아서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대학로에 가는 것이 낫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문화시설 불균형…최대 80배 차이
서울시의 25개 자치구별로 문화공간 시설 수와 콘텐츠 수준의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12일 서울시에서 자료를 받아 지난 5월 말 현재 각 구청에 등록된 공연장, 영화관, 미술관, 박물관 수를 집계해 분석한 결과다. 문화공간이 가장 많은 종로구에는 158개가 넘는 시설이 있는 반면 꼴찌를 기록한 중랑구와 동작구의 문화시설은 단 2개에 불과했다. 민간 시설을 제외해도 차이는 뚜렷하다. 중구와 종로구에는 공공 공연장이 각각 13개, 11개 있지만 동대문구와 동작구에는 하나도 없다.
도봉구는 영화 불모지다. 영화 한 편 관람객이 1000만이 넘는 시대란 말이 무색하게도 영화 상영관이 한 곳도 없다. 최승열 도봉구청 기획예산과 주임은 “지난달 민간 조사기관에 의뢰해 구민 300명의 의견을 받아보니 21% 이상이 공연장이나 영화관 같은 문화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오영덕 동대문구 문화체육과장은 “문화예술회관을 짓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몇 백억원이 드는 사업이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도봉구 공연관람, 마포·중구의 절반 이하
매년 서울시가 발표하는 ‘서울서베이’의 문화 항목을 보면 문화시설이 적은 지역의 경우 문화시설 이용 횟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낮지만 한 번 이용할 때 드는 평균 비용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도봉구민은 2011년 연평균 0.18회 공연장을 찾아 마포구·중구(0.44회), 서초구(0.34회)에 비해 이용률이 절반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평균 비용은 연 6만3990원으로 마포구(5만1130원), 서초구(6만2730원)에 비해 높았다. 서울시 전체 평균 이용 횟수는 0.25회, 평균 비용은 5만1000원이었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지역의 ‘문화적 허기’가 얼마나 큰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박기철 서울시 문화정책과 주무관은 “서울시에서 새로 문화공간을 지을 때 광역권별로 안배한다”며 “광역권별로 보면 서남권이 특히 취약한 편이라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주한미군기지 캠프 그레이 자리에 문화복합센터를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맞춤형 콘텐츠로 차별화해야
문화공간의 지역 편차도 문제지만 막상 문화시설을 지어놓고도 콘텐츠 빈곤으로 시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펴낸 ‘서울시 공공 공연장 활성화 전략’ 보고서를 보면 서울의 공공 문화센터 대부분이 운영이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충무아트홀, 마포아트센터, 강동아트센터 등 몇몇을 제외한 상당수 공연장이 지역주민의 예술 욕구를 충족한다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구청 행사장이나 예식장으로 쓰이며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관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도심의 여타 문화시설과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역별로 특화된 콘텐츠를 갖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이다. 나도삼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원문예회관의 경우 2004년 예산이 6억원에 불과했지만 성악가 조수미 씨의 공연을 유치할 정도로 운영이 활성화됐다”며 “운영자가 신념을 갖고 수준 높은 콘텐츠를 채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동아트센터가 최근 ‘강동스프링댄스페스티벌’ 등을 주최하며 무용 전문 공연장이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것도 모범 사례로 꼽힌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일본의 경우 지방 자치단체가 세운 3000여개 극장이 콘텐츠 부실과 예산 부족으로 인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가 지난 정부부터 극장의 30%를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발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공공 문화공간을 지역 주민들의 예술 욕구를 해소하는 창구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선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도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지역 문화시설은 주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며 “수동적인 문화감상형 관람객들을 창작이라는 새로운 문화예술 분야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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