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만 끼면 누구나 피아니스트…팔찌만 차면 헬리콥터 조종사

입력 2013-07-12 17:07   수정 2013-07-13 04:06

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 5년내 500억달러 시장…전세계 5억명의 일상 파고든다

헬리콥터 조종·가상게임…팔에 차는 생체 컨트롤러 출시
'구글 글라스' 시장 선두 질주…애플·삼성 '스마트워치' 경쟁
사생활 침해·배터리 수명 '걸림돌'




#. 올초 유튜브에 공개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음악당. 건반을 두드리기는커녕 악보도 볼 줄 모르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누군가 이 남자의 손에 장갑을 끼우고 30분이 지나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앞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의 손동작을 기억한 장갑의 움직임에 따라 건반 위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

#. 2054년을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톰 크루즈)은 양손에 키보드와 마우스 역할을 하는 장갑을 낀 채 허공에 뜨는 가상 자판 앞에서 손과 팔을 현란하게 움직여 컴퓨터 작업을 한다. 영화 속 상상은 당장 내년부터 현실이 될 것 같다. 토시처럼 생긴 밴드 형태의 ‘MYO’라는 생체 컨트롤러가 출시를 앞두고 있어서다. MYO를 팔에 착용하면 근육의 신호와 손가락 움직임을 감지해 실제 상황에서 반응한다. 별도 기기 없이 가상 게임을 하거나 헬리콥터를 조정하고, 프레젠테이션의 화면을 넘기거나 특정 화면을 키울 수도 있다. 이 제품은 149달러로 현재 2만5000개의 사전 주문이 끝난 상태다.

몸에 착용해 ‘제2의 피부’라 불리는 차세대 컴퓨터,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가 차세대 정보기술(IT)로 급부상하고 있다. 때마침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고 전통적인 PC 산업이 장기 침체를 보이면서 구글, 애플,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델, 인텔 등 글로벌 IT 거물들도 앞다퉈 ‘웨어러블 컴퓨터’를 새 먹거리로 삼기 위해 뛰어들고 있다.

공기의 무게를 기억해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칠 수 있게 만든 장갑, 날씨에 따라 디자인이 변하고 자동으로 세탁되는 옷까지 ‘웨어러블 컴퓨터’는 지금도 무한 변신을 하고 있다.

○5년 내 500억달러까지 성장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는 ‘웨어러블 컴퓨터’ 시장 규모가 올해 30억달러, 5년 내 300억~5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인사이더도 웨어러블 컴퓨터 사용자가 앞으로 5년 내 5억명 수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2년 뒤엔 스마트폰 사용자의 15%가 웨어러블 기기를 구매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구글은 안경처럼 쓰는 컴퓨터인 ‘구글 글라스’로 웨어러블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인터넷·통신은 물론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올 하반기엔 애플과 삼성이 손목시계 형태의 ‘스마트 워치’를 들고 나와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반전을 노리는 일본의 가전 명가 소니도 스마트 워치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세계 최대 모바일 칩 제조사 퀄컴도 자체 브랜드 ‘졸라(Zola)’로 오는 9월 스마트 워치를 발표한다. 이 제품에는 퀄컴이 자체 제작한 ‘미라솔’이 장착될 예정이다. 미라솔은 퀄컴이 독자 기술로 만든 디스플레이로 야외에서도 글자를 선명하게 읽을 수 있는 정전식 터치 디스플레이다.

PC 부품업체인 인텔도 스마트 워치를 실험 중이다. 저스틴 래트너 인텔 최고기술책임자는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전에 없던 디스플레이 기기를 지켜보고 있다”며 “단지 손목(시계)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하다면 멋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애플은 일본에 ‘아이워치(iWatch)’라는 상표권을 출원했다. 현재 디자이너 100여명이 스마트 시계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엔 폴 드네브 이브생로랑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해 관심을 끌었다.

삼성전자도 오는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가전박람회를 통해 ‘갤럭시 워치’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소니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는 앞서 지난달 안드로이드폰과 연동하는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를 공개했다. 애플의 최대 하청업체인 폭스콘도 무선으로 아이폰과 연결되는 시계를 발표했다.

○프라이버시 침해는 과제

‘웨어러블 컴퓨터’는 이미 스마트 의료용 단말기 시장에서는 대중화된 상태다. 올해에도 의료용 단말기가 전체의 60%를 차지할 전망이다. 수면 습관과 하루 소모 칼로리, 혈당과 혈압 등을 조사해 기록해주는 제품 등이 인기다.

건강 모니터링 분야에서 주로 활용되던 ‘웨어러블 컴퓨터’는 이제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골프 장갑에 간단한 기기를 부착해 센서가 초당 1000번 이상 스윙 자세와 속도, 위치를 기록하는 제품은 이미 상용화됐다. 미식축구용 헬멧은 선수의 동선을 분석해 알려주고, 수영선수의 물안경 위에 다는 ‘인스타빗’은 귀 앞쪽의 동맥으로 심박 수를 측정해 목표 지점에 얼마나 다가왔는지와 칼로리 소모량 등을 보여준다. 심리 상태를 읽어 적당한 음악을 들려주는 ‘마인드웨이브 모바일’, 자세가 구부정하면 진동으로 알려주는 ‘루모 백 자세 벨트’도 나왔다.

사바인 세이무어 파슨스디자인학교 교수는 “웨어러블 컴퓨터로 패션 혁명이 가능하다”며 “더러워지면 자동으로 세척되고, 날씨 변화에 따라 디자인과 색상이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특수 섬유 개발이 눈앞에 와 있다”고 말했다.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웨어러블 컴퓨터를 만드는 DIY(Do It Yourself)도 등장했다. 베키 스턴 아다프루트 대표는 “듣는 음악과 연동해 불빛이 켜지는 넥타이,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한 재킷, 내비게이션 칩을 내장한 배낭 등 저비용으로 최적의 웨어러블 컴퓨터 제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구글 글라스에 개인정보수집을 제한하는 협조를 요청 중이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사진 촬영을 하고 안면 인식을 통해 상대방 정보를 알 수 있는 서비스가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CNN은 “웨어러블 컴퓨터의 시장 확대는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달렸다”고 전했다.

배터리도 단점으로 꼽힌다. 기기의 특성상 작은 배터리로 긴 시간을 버텨야 하기 때문에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구글 글라스의 배터리 지속 시간도 5시간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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