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문국현 "정치는 잊은지 오래…한솔섬유서 유한킴벌리 신화 재현하겠다"

입력 2013-07-14 17:51   수정 2013-07-14 23:47

5년10개월만에 정치 외도에서 경영으로 돌아온 문국현 한솔섬유 사장

명품 회사는 오너·CEO·직원가치 공유에서 출발
'中企 활성화' 朴 대통령 기업 마인드 높이 평가
전통산업 지속적인 혁신이 창조경제 핵심"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64)가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17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해 2007년 9월 유한킴벌리 사장을 그만둔 지 5년10개월 만이다.

그가 복귀한 곳은 중견 의류수출업체인 한솔섬유. 수출만으로 매출 1조원을 올리는 비상장 의류업체다. 그는 지난 2일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는 자리에서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챔피언들’이라는 제목의 프레젠테이션을 직원들 앞에서 했다. ‘국내 톱 3’ 의류수출기업인 한솔섬유를 ‘세계 톱 3’ 리딩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11일 서울 가락동 한솔섬유빌딩 15층 사장실에서 문 사장을 만났다. 그는 “정치는 잊은 지 오래”라며 “유한킴벌리의 성공 신화를 한솔섬유에서 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외에 자주 갔다고 들었습니다.

“2009년 10월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뒤 곧바로 드러커 탄생 100주년 기념교수로 초빙돼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경영했던 유한킴벌리가 현대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 교수가 말한 경영혁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겁니다. 2005년부터 한국 피터드러커소사이어티 이사장직도 맡아왔습니다. 그때부터 1년 동안 거의 250일을 해외에 있었죠. 1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기업과 학교 등에서 드러커의 경영 철학과 성공 사례를 전파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2011년부터는 드러커인스티튜트(컨설팅회사) 고문으로 중국에서 컨설팅을 했습니다. 한 주를 중국에서 사흘, 한국에서 나흘 정도 보냈습니다.”

▷정치에 대한 아쉬움은 없습니까.

“잊은 지 오래입니다. 그동안 주로 해외에서 활동해 (국내 정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문 사장은 자신의 정치 활동에 대한 단상이나 박근혜 정부의 정책,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활동, 정쟁 상황 등 정치에 관한 잇따른 질문에 “정계를 은퇴한 지 오래됐고 관심도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왜 한솔섬유를 택했습니까.

“한솔섬유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100% 수출기업’이에요. 창업자인 이신재 회장은 회사를 세계적인 명품기업으로 도약시키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업가 정신과 저의 글로벌 경영 노하우, 그리고 사람 중심의 창조경영으로 명품기업을 만들어 본 경험이 결합하면 독일의 히든챔피언 같은 명품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문 사장은 이신재 회장의 누이인 이가옥 수석부사장과 한국외국어대 영어학과 동기다. 그는 “이 부사장뿐 아니라 이 회장, 이 회장의 친형인 이영재 감사, 이양재 원광대 교수와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말했다.

▷취임사에서 한솔섬유를 ‘히든챔피언’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명품회사는 경영자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유한킴벌리가 한참 어려울 때 사장이 됐는데, 퇴임할 때는 매출 1조원이 넘는 명품회사로 만들고 나왔습니다. 근로자들의 경영 참여율과 임금이 업계에서 가장 높았고, 이직률은 가장 낮은 ‘존경받는 기업’이 됐습니다. 이는 직원들이 창업자와 전문경영자 같은 주인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솔섬유엔 국내 1000명, 해외 4만1000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게 제 역할입니다.”

▷이신재 회장과의 역할 분담은.

“이 회장이 직접 찾아와 경영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전제조건은 본인도 창업 때 각오로 돌아가 경영 전면에 나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제 취임식 직후 바로 미국으로 가서 바이어를 만나고 동남아 공장을 둘러봤습니다. 독일 히든챔피언들의 공통점은 이처럼 창업자와 전문경영인, 직원들이 가치를 공유하면서 같이 뛴다는 거지요.”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게 말처럼 쉬울까요.

“8월에만 워크숍 일정으로 열흘을 잡아놨습니다. 매주 금요일에 한 번씩 하고, 세 번째 주는 1주일 내내 합니다. 한 번에 100명씩 하면 열 번으로 1000명의 전 직원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경영자와 직원들이 비전을 공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전을 공유한 다음엔 역량을 키워줘야 합니다.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능력으로 신뢰받고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면 자연스럽게 주인의식도 커지게 됩니다. 워크숍 후엔 해외 공장도 돌아보고, 바이어들도 만나 비전과 가치 공유에 나설 계획이에요. 유한킴벌리 때도 임직원 3000명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 1만명과 비전 및 가치를 공유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기업들의 경영혁신을 높이 평가하셨는데.

“우리 기업들은 아직도 의사결정이 톱다운 방식입니다. 최고경영자나 연구개발 부서에서 결정된 의사가 아래로 전달돼 내려갑니다. 그러나 중국은 쌍방향 체제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습니다. 4000만개 기업 중 상위 10%는 임직원이 경영에 참여하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피터 드러커식 평생학습제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 사장은 기업 ‘스스로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기업 스스로 변신에 나서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되고 세계적인 리딩 그룹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도 정책적으로 바뀌어야 할 점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얘기는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조2000억달러 수준에서 7년째 머물고 있습니다. 그 사이 브라질 러시아 등은 2조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중국은 9조달러가 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머뭇거리는 것은 정부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업의 문제입니다. 전 세계 시장이 70조달러 규모입니다. 한쪽에서는 정부가 할 일도 있겠지만 전 세계 시장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기업인의 몫입니다.”

▷정부 쪽에서는 창조경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정부가 정보기술(IT)과 문화를 활용한 창조경제를 강조하는데,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70조달러 규모가 넘는 전통산업을 계속 혁신시켜 성과를 내는 것도 창조경영이고 창조경제입니다. 신산업이라는 것은 규모를 이루는 데 10~20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기존 산업을 혁신해 발전시키는 게 창조경제의 본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잘 모르겠지만 고용률 70%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눈에 띕니다. 실업률만 강조하면 마치 고용률이 90%가 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고용률을 챙기다보면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문제가 무엇인지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직종은 왜 적은지, 서비스 업종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해외 일자리는 어떻게 찾을지, 근무시간을 어떻게 조정할지 구체적으로 프로그램이 따라붙게 돼 있습니다. 산업과 사회정책을 통합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은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당선 후 중소기업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게 대기업을 중요시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드는 것입니다.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나서야 해요. 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말만 하는 것보다 행동이 따라가주는 게 중요한데, 그런 맥락에서 매우 적절했다고 봅니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기업 마인드가 있다’고 100번 얘기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때도 교육과 일자리, 중소·중견기업 육성 등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업 마인드가 있고 실천적이라는 점을 평가할 만합니다.

문국현 사장은 누구

문국현 사장은 ‘스타 기업인’이었다. 유한양행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회장의 ‘재산 사회환원’에 감동해 유한킴벌리에 입사했고 사장으로만 13년간 일했다.

그는 사장 재직 시절 인간 중심의 경영혁신운동인 ‘뉴패러다임’을 주창했다. 일자리 나누기, 교육 훈련, 임직원 경영 참여 등이 핵심이었다. 이를 통해 매출 1700억원대이던 회사를 1조40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2007년 창조한국당 후보로 대통령선거를 치렀으나 낙마했다. 이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재오 의원을 꺾고 서울 은평을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형이 확정돼 2009년 말 의원직을 상실했다.

△1949년 서울 출생 △1972년 한국외국어대 영어학과 졸업 △1974년 유한킴벌리 입사 △1995년 유한킴벌리 사장 △2003년 킴벌리클라크 북아시아 총괄사장 △2007년 10월 창조한국당 대표 △2008년 18대 창조한국당 국회의원 △2010년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 대표 △2011년 드러커인스티튜트 고문 △2012년 가톨릭대 석좌교수 △2013년 한솔섬유 사장

박수진 기자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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