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일까.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공연 중인 ‘하이스쿨 뮤지컬’을 관람하는 내내 궁금했다. 공연장에는 ‘오케스트라 피트’라고 불리는 연주 공간이 따로 없다. 무대 위나 공연장 내부 어디에도 연주자들의 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궁금증은 엔딩 장면에서 해소된다. 출연진 모두가 마지막 곡을 부르는 중간에 무대 배경세트의 상단부가 활짝 열리며 8인조 밴드의 박진감 넘치는 연주 모습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커튼콜 무대에서 배우들은 손을 높이 들고 팔짝팔짝 뛰며 밴드에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어느 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국내 초연작인 ‘하이스쿨 뮤지컬’(사진)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이런 생기발랄함이다. 극중 고등학생들인 젊은 배우들이 귀에 착착 감기는 팝음악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펼치는 춤과 노래에 밝고 경쾌한 에너지가 가득하다.
원작은 2006년 디즈니채널에서 방영된 TV용 뮤지컬 영화다. 고등학생들의 꿈을 향한 열정과 사랑, 우정을 풋풋하게 그린 이 영화는 미국 10대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디즈니채널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영화 수록곡 중 9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 동시에 올라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은 역동적인 군무와 감각적인 음악, 신속한 장면 전환 등으로 디즈니 하이틴 뮤지컬의 매력을 잘 살려낸다. 하지만 원작의 ‘태생적 한계’가 결정적인 약점으로 드러난다. 미국 공연은 관객들이 TV영화를 봤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화면으로 느낄 수 없는 생동감과 현장감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위주로 가다 보니 드라마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제작진은 원작이 생소한 국내 관객들을 위해 드라마를 보완했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두 주인공의 갈등과 화해, 친구들의 심경 변화 등 극 내용의 설득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두 주인공이 각각 농구 결승전 체육관과 과학경진 대회장에서 벗어나 뮤지컬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시간을 5분으로 설정한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디즈니식 환상이 반영된 ‘너무나 미국적인’ 스토리에 개연성마저 떨어지다 보니 극은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퍼포먼스가 주는 즐거움도 감퇴시킨다. 대사도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좀 더 구어체로 맛깔스럽게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은 오는 9월1일까지, 6만~12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 뮤지컬 '해를 품은 달', 화려한 무대 빈약한 음악…외화내빈
▶ 동심·상상력 자극…얘들아, 뮤지컬·발레 즐겨볼까
▶ 이지수 씨 "키스 벌써 400번…연기 뭔지 알 것 같아요"
▶ 배꼽 잡는 연극 한마당 7월 15일부터 대학로
▶ 비장·서정·활력…와일드혼 선율에 객석은 숨죽였다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