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아이들에 詩를 주고 싶다

입력 2013-07-17 17:26   수정 2013-07-18 00:31

고아원 출신 이철경 시인 첫 시집


소년은 여섯 살 때 강원도 화천의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 집안이 몰락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고아원 생활은 폭력의 연속이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산에 묶어 놓은 채 내려오기 일쑤였다. 도망도 쳐봤지만 결국 스스로 돌아왔다. 갈데가 없어서였다. 그런 생활이 19세까지 이어졌다.

최근 47세의 늦깎이로 첫 시집 《단 한 명뿐인 세상의 모든 그녀》(북인)를 발표한 이철경 시인의 얘기다. 어둡고 배고팠던 고아원 시절 그에게 빛이 됐던 건 문학이었다. 고아원에 있던 조그만 도서관에서 김소월 강은교 등의 시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공고 졸업 뒤 공단에 취직하고 나서 습작을 시작했다. 그는 “그때 그 시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도 폭력 속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인의 길을 걷기엔 삶의 압력이 너무 컸다.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아내가 사라지면서 졸지에 두 딸을 키우는 ‘싱글대디’가 됐다. 돈이 필요했고, 임금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산업대 야간대학에 진학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공릉동까지 매일 왕복하며 졸업장을 땄다.

“과거 이야기는 지인들에게도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시집을 냈다는 건 어차피 다 드러내는 거니까…. 시를 쓸 때도 처음엔 제 상처를 외면했는데, 그러니까 안 써지더라고요. 가장 큰 걸 두고 곁가지만 끼적거렸으니 될 리가 없었죠.”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한 건 2007년 고려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물론 직장 생활을 하면서였다. 2011년 목포문학상 평론 부분에 당선되며 평론가로 먼저 등단했고 지난해 초 시 전문 계간지 ‘발견’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다.

자신의 과거를 토해낸 이번 시집에는 ‘허기’와 ‘결핍’의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그의 시는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고 희망과 빛으로 도약한다.

‘대책 없이 허기진 아이들의/ 얼굴에는/ 마루 밑바닥에/ 생옹이 박히듯/ 응어리 하나씩 담겨 있다// 옹이구멍으로/ 햇살이 스며들자/ 버려지거나 잃어버린 물건들이/ 꿈틀거린다/ (…)/ 햇살은 버려진 아이들의/ 눈망울에 걸려 있는/ 어둠을 닦아내며/ 뻥 뚫린 옹이의 흔적을 지워내고 있다.’ (‘마룻바닥 밑에서’ 부분)

그는 토요일마다 전북 정읍에 내려가 편부모, 차상위계층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

“아이들과 상처를 나누면서 많이 배웁니다. 사람은 왜 꿈을 꿔야하는지를 느끼죠. 토요일 새벽기차를 타야해서 ‘불금’에 술 한 잔 못하지만요(웃음). 아이들에게는 ‘빵’과 ‘옷’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문학을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꽃에 물을 주듯이 말이죠.”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 뽀송뽀송한 詩로 노래한 육아일기
▶ 조정래 "경제 정글 중국,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적"
▶ 부글부글 끓던 1990년대를 말하다
▶ 동서양 고전 권당 2900원
▶ 베스트셀러 1위 구매 쏠림현상…교보문고, 상반기 판매동향 분석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