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차별법' 폐지 50년…지머먼 사건으로 본 美 인종차별 논란

입력 2013-07-19 17:17   수정 2013-07-19 21:32

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 지머먼 사건 통해본 미국의 인종차별 논란

링컨 1863년 노예 해방선언…킹목사 1965년 흑인인권운동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인종차별, 1991년 LA 폭동도 유발
히스패닉 영향력 커지자 흑인들 박탈감 표출 시각도




비무장한 흑인 소년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히스패닉계 백인의 무죄 판결이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는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흑인 사회와 인권단체들은 “인종차별적인 판결”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고 항의 시위는 로스앤젤레스(LA) 뉴욕 등 전국으로 번졌다. 일부 시위대는 상점 유리문을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고 있어 폭동 사태마저 우려된다.

흑백차별을 정당화한 ‘짐 크로법’이 폐지된 지 반세기가 흘렀지만 인종차별이라는 해묵은 논란은 미국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인종차별 논란뿐 아니라 총기 사용, 정당방어법, 배심원단 선정 기준 등 미국 사회의 민감한 쟁점이 모두 집약돼 있다.

○비무장 흑인 소년 총격 살해…‘무죄’

지난해 2월 미 플로리다주 샌퍼드의 동네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 이 지역 자경단(민간방범조직) 소속의 조지 지머먼(29)은 후드티 차림의 마틴을 수상하게 여겨 미행하다 시비가 붙었다. 몸싸움을 벌이다가 지머먼은 총을 꺼내 소년을 살해했다. 지머먼은 “마틴이 머리를 가격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사고 직후 지머먼의 주장을 받아들여 44일간 체포하지 않았다. 검찰은 뒤늦게 지머먼을 2급 살인죄로 기소했고, 플로리다주 법원 배심원단은 지머먼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인정해 무죄 평결했다. 배심원단 6명 가운데 흑인은 없었다. 지머먼의 수갑이 풀리자 흑인 사회와 인권단체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미국의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무죄 판결 후 성명을 통해 마틴의 죽음은 비극이라고 말하면서도 “미국은 법치국가”라며 냉정과 자제를 호소했다. 흑인 사회와 인권단체들은 연방정부에서 지머먼을 인권침해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첫 흑인 법무장관 에릭 홀더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정당방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앤시어 부틀러 펜실베이니아대 종교학과 교수는 “미국의 신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라며 판결을 개탄했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것은 백인 위주의 배심원단 구성이다. 플로리다주 샌퍼드에는 흑인 인구가 30%에 이른다. 그런데도 배심원단에 흑인은 한 명도 없었다. 당초 배심원단 후보에 흑인 3명이 있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모두 제외됐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배심원단에 흑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이 같은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갈등

17세기 아프리카에서 납치돼 미국으로 팔려온 ‘쿤타킨테’의 후손들은 19세기에 역사적인 순간을 맞는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3년 1월1일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하면서 마침내 시민으로서 인권이 회복됐다. 하지만 그 후 100년여 동안 또 다른 차별과 억압이 이어졌다. 주마다 흑인과 백인을 분리차별하는 ‘짐 크로법’을 제정하면서 학교 식당 버스 등을 함께 이용할 수 없도록 했다. 심지어 빵 공장에서 빵을 반죽하는 일도 금지됐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분리돼 있지만 평등하다”며 각 주의 흑백 분리법을 정당화했다.

195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흑인 여성 로자 파크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흑인인권 운동으로 이어져 결국 흑백차별을 규정한 짐 크로법은 1965년에 효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수백년간 지속된 인종차별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1991년 3월 27세인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은 LA에서 음주 과속운전을 하다 경찰의 정지 명령을 무시, 달아나다가 붙잡혔다. 백인 경찰관 4명은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인근 주민이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이 장면이 TV 전파를 타면서 흑인들의 공분을 불러왔다. 기소된 경찰관 4명은 이듬해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무죄 평결을 받았다.

이에 분노한 LA지역 흑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다. 이것이 미국에서 최악의 인종 폭동으로 꼽히는 ‘LA 폭동’이다. 당시 LA의 한인타운이 집중 습격돼 유색 인종 간 갈등도 부각됐다.

그 후에도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2002년 LA 남서부 잉글우드의 한 주유소에서 백인 경찰 제러미 모스가 16세 흑인 소년 도너번 잭슨에게 수갑을 채운 뒤 순찰차 트렁크 위에 엎드려 세운 채 주먹으로 구타한 장면이 방송되면서 이 경찰을 해고하라는 시위가 벌어졌다. 모스는 사건 직후 직위 해제된 뒤 권력 남용과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배심원단이 유죄평결을 내리지 않자 흑인 사회가 들끓었다.

○인종 용광로, ‘경쟁력 원천→갈등 요인’

이번 ‘지머먼 사건’을 흑인과 히스패닉 간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머먼은 히스패닉계 백인이다. 2000년 미국 전체 인구의 12.3%였던 흑인은 2010년 12.6%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히스패닉은 12.5%에서 16.3%로 급증했다. 특히 히스패닉은 높은 출산율로 2060년에 미국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흑인들의 입장에서는 최다 마이너리티 자리를 히스패닉에게 빼앗기는 셈이다. 흑인은 자신의 선조들이 미국을 건설하는 데 일조했지만 히스패닉들이 ‘무임승차’로 과실을 따 먹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히스패닉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정치 영향력도 밀리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히스패닉계 어머니를 둔 지머먼이 무죄 판결을 받자 흑인들의 감정이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인종과 출신, 국적과 관계없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생긴 ‘인종 용광로’는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든 경쟁력의 원천으로 꼽힌다. 이 용광로가 지금 식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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