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인 대접받는 시대 올것'…아버지 충고로 공고 진학
첫 선발 탈락, 출전분야 바꿔 1년 넘게 하루 16시간 강훈
100점 만점에 98.94…전세계 참가자 1027명 중 최고
한국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지난 2~7일(현지시간) 열린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18번째 종합우승이다. 이번 대회에는 37개 종목에 41명의 선수가 출전해 금 12개, 은 5개, 동 6개로 경쟁국인 스위스와 대만을 제쳤다. 모든 선수들의 맹활약 속에 현대중공업 소속 원현우 선수(22)가 주목받았다. 철골구조 종목에 출전한 그는 만점에서 불과 1.06점 모자란 98.94점으로 전체 46개 종목의 1027명 선수 중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대회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은 그의 몫이 됐다. 보름 동안의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뒤 입사 3년 만에 첫 휴가를 떠나기 전인 지난 16일 울산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 원 선수를 만났다.
▷귀국 후 집에도 안 들르고 곧바로 출근했는데요.
“과제를 복기해 보려고요. 과제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수치화해서 다시 분석했죠. 훈련 교사이신 신충찬 부장님(56·기술교육원)과 최웅의 부장님(52·해양사업기획부)이 철골구조 종목 심사위원이었는데 만점에서 1.06점 모자란 원인을 분석하느라 꼬박 하루를 보냈습니다. 2위를 차지한 일본 선수와는 11점 이상 점수 차가 났고 참가선수 평균 점수가 70점대였습니다. 압도적 승리라고 평가받았지만, 회사 측에서 귀국하자마자 재검증하는 것을 보고 들뜬 마음을 추스르고 기술 연마에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철골구조물은 광안대교 같은 대형 다리부터 석유시추선, 해양 원유시추장비 등에 이르기까지 핵심을 이루는 기술영역입니다. 어려운 분야에서 MVP까지 되도록 도와준 회사에 꼭 보답해야죠.”
▷기능올림픽 대표되기가 양궁이나 태권도 대표보다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2010년 11월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 입사 후 열린 판금분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준우승했습니다. 국제기능올림픽 출전 기회는 1등에게만 주어지는데 모교인 인천기계공고 1년 선배에게 빼앗겼습니다. 고교 3년 내내 판금분야에 올인했는데, 정말 충격이 컸죠. 기능올림픽은 올림픽과 달리 출전 기회를 한 번 놓치면 재도전이 거의 힘듭니다. 나이도 22세 이하로 제한되고요. 양궁이나 태권도보다 훨씬 어렵다고 보면 됩니다.”
▷재도전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쓴맛을 본 뒤 정말 많이 방황했어요. 의장2부에 배치돼 선박엔진룸에서 파이프 연결 작업을 했습니다. 고교 때 판금기술을 가르쳐 주던 이정근 선생님(55)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포기하지 말고 철골구조 분야에 다시 도전해 보라. 판금과 철골구조는 철판 두께, 크기, 작업 방법에서 차이가 나지만 작업 재료가 철판인 점은 비슷하니까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죠. 바로 기술교육원을 노크했습니다. 회사에서 철골구조 분야에 출전하는 선수가 없으니까 이를 악물고 훈련하겠다는 다짐에 흔쾌히 기회를 다시 주셨죠. 1년여 기간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 훈련에 매달렸습니다. 훈련 과정은 무척 힘들었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철골구조물을 그려가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덕분에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최고 점수로 기능올림픽 출전 티켓을 잡았죠.”
▷대회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과제는 보통 3개월 전에 공개되는데 모형 불도저로 결정됐습니다. 그렇지만 대회 당일 설계 도면의 30%가 바뀌기 때문에 수많은 변수를 가정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3㎡ 조금 넘는 작업실에서 대회 첫날인 2일부터 5일까지 22시간 동안 구조물을 제작했습니다. 전체 골격을 만드는 첫날이 가장 힘들더군요. 소형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 130여가지의 정밀도를 정확하게 맞춰야 하는데 첫날 실수가 있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신 두 분 선생님께서 숙소에서 밤을 새우며 기술보완을 해주신 덕에 둘째날부터는 도면대로 제작하는데 힘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날 죽을 힘을 다해 완성품을 내놓았습니다. 외국 심사위원들은 매일 과제물을 들여다보며 감점 요인을 찾고는 했는데, 마지막날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더군요. 잘될 것 같다는 예감이 확 들었습니다.”
▷MVP인 알버트비달상 생각도 했겠습니다.
“철골구조물 분야 참여 선수는 11명인데, 모두 쟁쟁한 실력자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상식 때까지 메달권 진입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막상 금메달을 받고 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종목 시상이 끝났는데 갑자기 전광판에 태극기와 함께 ‘Won Hyun Woo’란 영문 이름이 나오는 걸 보고서 ‘일이 벌어졌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철골구조물은 100% 수작업으로 만드는데, 퍼펙트에 가까운 점수를 받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대회가 끝나고 아일랜드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기술국 관계자들이 기술교육원 선생님들에게 자국의 기능교육을 맡아달라고 러브콜을 보내는 걸 보고 정말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능올림픽 금메달을 꿈꿨나요.
“아버지(원종훈·46)께서 인천기계공고를 나오셨고 동생이 같은 학교 3학년입니다. 아버지는 ‘기능인이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공고에 진학해 기술을 익히길 원하셨어요. 공부보다 기계 만지는 게 좋아 일찌감치 아버지 후배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2008년 학교에 들어가 판금 기술을 배운 지 3년 만인 2010년 지방기능경기대회와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동생도 판금분야 지방경기대회에서 이미 금메달을 땄고 올해 전국기능대회를 준비 중입니다. 가족이 모두 기능인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현대중공업 입사 이후 아버지 말씀이 맞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산업현장의 고령화로 회사에도 해마다 1000여명 이상 은퇴자가 생겨나고 있는데 젊은 기능인이 부족해 걱정입니다.”
▷금메달 리스트로서 받는 혜택은 무엇입니까.
“메달을 따면 2240만~6720만원의 상금과 훈장이 수여됩니다. 저는 정부 상금 6720만원과 회사 상금 1000만원을 받았습니다. 산업안전요원으로 근무하는 병역 특전도 주어지고 기능 관련 일을 하면 평생 매년 평균 1200만원의 연금도 받습니다. 요즘 대졸 취업난이 심각한데 고교생들이 기능인에 관심을 갖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 들어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정부의 기능인 정책에 대해 바라는 게 있는지요.
“1970년대 말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하면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인천공항에서 정홍원 국무총리께서 직접 환영식을 주관한 게 정말 모처럼만이라는 얘기를 듣고 조금 실망했어요. 카퍼레이드는 아니더라도 기능인을 우대하는 풍토가 다시 살아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기능올림픽 출전 기회는 평생 단 한 번이라는 점에서 메달리스트가 아닌 참가 선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줬으면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 더 많은 기술을 배워 철골구조는 물론 다른 분야의 명장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는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여건이 되면 공부를 더 해서 기술분야 대학교수에도 도전하려고 합니다. ”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
■ 국제기능올림픽대회
International Youth Skill Olympics. 직업 기능을 겨루는 국제대회로 참가 연령은 17세부터 22세까지다. 1950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첫 대회가 열린 이래 2년마다 세계 각 도시를 돌아가면서 개최되고 있다. 대회 본부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으며 올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42번째 대회가 열렸다. 한국도 1978년 부산에 이어 2001년 서울에서 개최했다.
한국은 1967년 16회 스페인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1973년 21회 옛 서독(독일)대회 때 준우승한 뒤 23회 네덜란드대회에서 첫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1978년 부산 대회에선 출전 31개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따냈다. 이후 한국은 1991년 31회 네덜란드대회까지 9연패를 달성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기능올림픽 첫 번째 금메달은 1967년 양복·제화에서 나왔다. 1970년대에는 중공업, 1980년대에는 자동차, 1990년대에는 정보산업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최근에는 모바일·로봇·판금·철골분야에서 강세다.
시대별 주요 산업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을 넓혀온 셈이다.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는 이번 독일대회 우승을 계기로 한국의 기록을 기네스북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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